사 설


 

 

추워도 너무 추운 이번 겨울. 지난해 11월부터 일찌감치 몰아닥친 한파가 해를 넘기고 1월의 끝 무렵에 와서도 전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금 공동주택 관리현장은 24시간 비상대기모드다. 무엇보다도 ‘물’이 최대 난적이다.
보통 ‘물’은 ‘불’이나 ‘더위’와 상극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건물관리에 있어서만큼은 ‘추위’와 상극이다. 물이 얼면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와 마비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수도가 얼면 음식조리는 물론이고 씻을 수도 없으며, 하수배관이 얼면 저층가구에 역류가 발생해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물이 얼음덩어리로 변해버리면 불이 나도 속수무책이다. 동파사고 땐 사방이 물바다다. 겨울에 물은 고약하지만 소중히 다뤄야 할 존재다.
변덕쟁이 물은 저수조나 배관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도 보통 골칫거리가 아니다. 영하의 날씨에 내리는 눈이나 비는 그대로 얼어붙어 크고 작은 사고를 유발한다. 그래서 대비가 필요하다.
가을이 오면 관리사무소는 한 철 먼저 ‘동절기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장기 기상예보를 체크해가며 염화칼슘의 필요량을 산출·주문해 요소요소에 쌓아놓고, 넉가래와 손수레, 눈삽과 쇠삽, 싸리비와 도로비, 장갑과 장화 등을 점검해 부족한 것들을 보충한다.
하지만 치밀하게 준비하고 기습 폭설에 전 직원이 기동타격대처럼 출동해도 사고는 일어난다. 사고 확률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의 문제가 위험대비의 관건이다.
그런 준비에도 불구하고 막상 일이 터졌을 때 관리자에 대한 법적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험에 대비한 능동적 준비와 대처가 사전에 얼마나 잘 돼 있었느냐에 따라 법률적 판단의 결과가 달라진다.
1년 전 겨울, 어느 아파트 입주민이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77세의 고령이었던 그는 병원치료 중 안타깝게 숨지고 말았다. <관련기사 3면>
사고를 당한 유가족은 관리사무소장과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및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총 2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소장과 입대의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관리사무소는 사고 전에 빗자루, 넉가래, 삽 등 제설장비와 염화칼슘, 모래 등을 단지 곳곳에 비치했고, 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평소 제설·제빙작업은 물론 사고주의 안내방송을 실시해 왔으며, 사고 당일에도 염화칼슘을 뿌리는 등 제설작업을 벌였다.
재판부는 “(중간 생략)아파트 관리주체의 재정적·인적·물적 제약 등을 고려하면 아파트 내의 인도 및 도로에 형성된 모든 빙판을 제거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입주자로서는 관리주체가 제설작업을 통해 빙판을 제거한 인도와 도로부분 등 안전한 길로 보행해 사고의 위험을 스스로 방지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세계적으로 치안이 확실해 관광객이 편히 여행할 수 있다고 정평이 난 국가에서도 강도·살인 등 강력사건이 일어난다. 위험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뿐이다.
사고 역시 마찬가지. 아무리 철저히 대비해도 사고율 제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사고는 준비와 노력에 행운까지 겹쳤을 때 가능한 일이다.
사고는 바이러스. 무관심과 안전불감증이 무방비를 부르고, 그때 사고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훌륭한 백신(대비책)은 입주민뿐 아니라 주민대표와 관리자까지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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