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의 백제 문화유산 (4) 백제인 왕의 극락왕생 빌며 세운 대사찰

박영수의 문화답사 박영수l승인2018.01.10 13:35:21l10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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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글자를 만든 왕인, 아직기와 그 후손들
일본 문자인 ‘가나’의 ‘아이우에오’는 고대 백제인들이 만들었다. 백제인들은 서기 6세기경부터 일본말에 맞는 글자를 하나둘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힌 사람은 가쿠슈인대학 국문학자며 동시에 고대사학자인 오노 스즈무 교수다.
우리나라 ‘이두’와 마찬가지로 한자어를 일본어에 맞춰 써온 ‘만요가나’가 이두의 영향을 받았다고 처음으로 밝힌 사람은 일제 때 경성제대 조선어학과 오구라 신페이(1882~1944) 교수였다.
무엇 때문에 백제인들은 ‘가나’를 만든 것일까. 그들은 왜나라 지배 과정에서 왕실에서 사용할 문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왜로 건너간 왕인은 왕자들에게 한자어 교육을 담당하면서 일본어 문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왕인과 아직기의 후손 백제인들 역시 구다라스 왕실 고위직에 근무하면서 한자어를 왜나라 말에 맞춰 약 5세기 동안에 걸쳐 글자를 만들어 나갔다. 그후 왜인들은 ‘가나’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약 1200년 전 친어머니가 백제 황후 화신립 황태후였던 간무왕(781~806 재위) 치하 무렵이다.

*교토-기요미즈데라(청수사淸水寺)
기요미즈데라(청수사)는 교토 히가시야마의 중앙. 오토와산을 배경으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툇마루에서 교토의 전반을 내려다보고 있다. 특히 맑은 날에는 멀리 오사카까지 바라보이며 넓이 약 13만평에 이르는 절터는 봄에는 사쿠라, 가을에는 단풍 등으로 사계절의 경관이 훌륭해 관세음보타낙의 극락정토로서 신앙의 대상이 돼 있다.
기요미즈데라는 고대 일본 정복왕인 백제인 오진왕(응신, 4~5세기 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8세기 말 세워진 절이다.
이 사찰을 창건한 이는 백제인 가문의 무장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758~811)다. 그의 조상은 오진왕 때 백제에서 건너간 백제 왕족 아치노오미였다. 다무라마로는 백제계 간무왕(환무桓武, 770~806)의 총애를 받던 왕실 최고 무장인 정이대장군이었다. 그는 793년 왕도를 위협하며 일본 동북지방으로 밀고 내려오는 훗카이도 큰 섬 아이누족 집단인 에조(에미시, 에비스)의 무력세력을 정벌하는 큰 무공을 세워 간무왕의 신임을 독차지했다. 간무왕은 당시 아이누족 에조 무력집단의 큰 위협을 받고 있었고, 무장 다무라마로에 의해 아이누족을 계속해 격퇴, 섬멸시켰다. 이러한 무공으로 다무라마로는 796년 동북지방의 태수로 임명됐고, 797년 왕실 최고 무장인 정이대장군이 됐다.
다무라마로의 성명 위에 붙은 것은 ‘사카노우에(판상坂上) 즉 ‘언덕 위’ 라는 판상 두 글자다. 그것은 다무라마로가 일본 동북지방으로 쳐내려온 아이누족을 정벌하며 무공을 거듭 세우고 나서 왕도 헤이안경(지금의 교토시) 동쪽 언덕 위에다 기요미즈테라(청수사)를 세운 뒤부터의 일이라고 도쿄대학 건축사학 담당 오타 히로타로 교수는 말했다.
 헤이안경 동쪽 산 언덕 바윗골 험준한 단애 위에다 대형 기둥들을 나란히 세워 건축한 기요미즈데라의 웅장한 본전 건물은 일본 국보 중에서도 손꼽히는 문화재다. 본전 지붕은 노송나무 껍질로 덮었다.
다무라마로는 비록 이전 왕도의 왕궁 본전 건물이었지만 국왕으로부터 직접 그것을 물려받을 만큼이나 간무왕의 총애를 받았다. 현재 일본 불교 기타훗소슈 총본산이 된 단애 위에 웅장하게 서 있는 본전 건물을 두고 예로부터 비유해 오는 명언이 있다. “기요미즈의 무대로부터 뛰어내린다”는 것인데 그 풀이는 “결연하게 단행한다”다. 이는 무장 다무라마로의 에조 침략 퇴치의 무용 등 그의 늠름하고 결연한 전공의 발자취에서 생겨난 찬사다.
백제인 후손인 다무라마로가 헤이안경 동쪽 산 언덕에 세운 오진왕의 기요미즈데라는 창건 후 여러 번 화재로 소실됐으나 재건됐다. 17세기 초인 1633년에는 에도바쿠후 제3대 정이장군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 (1604-1651)가 앞장서 오진왕의 기요미즈데라를 재건했다.
도쿠가와 이에미쓰 장군은 백제인 간무왕의 후손이며, 교토 남부 야와타시의 오진왕 큰 사당인 이와시미즈하치만궁도 헤이안경의 기요미즈데라를 재건한 이듬해인 1634년에 재건한 인물이다.
정이대장군하면 흔히 근세의 강력한 무사정권이었던 에도바쿠후(1603~1867) 최고 실권자였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 1542~1616)부터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일본 왕실의 정이대장군 직제는 그보다 앞선 간무왕 시대인 794년에 시작됐다. 이 당시 간무왕 밑에 있던 백제계의 무장 오도모노 오토마로가 최초의 정이대장군이 됐고, 다무라마로가 큰 무공을 세우며 뒤를 이었다.
청수사 들어오는 길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서양인이 두루 섞여 바글바글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도저히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곳 청수사의 수려하고 고적한 분위기에 압도되다 보면 여행은 무엇인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인지 또한 무엇을 마음으로 느끼고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길 없는 길을 인도해주는 소중함을 비로소 알고 느낄 수 있는 청아한 고찰임을 증언하고도 남는다.

 

 

 

 

박영수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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