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과 손잡이, 그리고 링

열린세상 오정순l승인2017.12.04 15:34:29l10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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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 순  수필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타는 사람들끼리 가볍게 스쳤는데 나의 숄더백이 엘리베이터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얼른 주워들었다. 민망하게 손잡이 한 쪽이 본체와 완전히 분리됐다. 나는 오리를 보듬은 듯 가방을 안고 내렸다. 
거리로 나와 살펴보니 본체와 손잡이가 연결됐던 링이 파손됐다. 못 드는 이유도 간단하고 부품도 별 것 아니다. 일말의 희망을 걸고 인근의 매장이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값을 어느 정도 치른 가방이라 당연히  AS가 될 것이라 믿었으나 자기 매장에서 산 것이 아니면 AS가 안 된다는 답이다. 대번에 그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는 추락한다. 
그곳에서 가방 수선집을 안내해줬다. 그 정도의 부품은 있을 것 같아 찾아갔다. 고쳐지든 아니든 확인이라도 하고 싶었다. 링의 크기가 비숫하기만 해도 좋은데 수선집에서는 호들갑이다. 손잡이 양 끝의 링을 같게 맞춰야 하며 결코 간단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대번에 링 갈기를 포기했다. 일단 들고 갈 수 있도록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들은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시퍼런 비닐 끈을 들고 나온다.
아무리 수선집이라 해도 아름다움과 기능을 살려내는 장인들인데, 임시 방편치고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해 가지고 가더라도 말려야 할 직업군이다. 가방이 욕한다고 그렇게는 하지 말라고 말려야 할 사람들이다. 도처에 가죽 자투리가 널려 있는데 시퍼런 비닐 끈으로 질끈 묶어 내준다. 그들은 수선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지 기능을 잃은 것들을 살려내면서 보람을 누리는 장인 정신이 살아있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미장원 원장은 고생을 해도 나갈 때 머리가 아름다우면 기분이 좋아져서 그 기분으로 직업적 애환을 물리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조금 전에 엉성하게 들고 들어오던 때와는 달리, 그래도 손잡이란 기능이 살아나니까 퍼렇거나 말거나 마음이 가벼워졌다.
모든 물건은 아름다운 것 이전에 먼저 실용적인 데서 출발했을 것이다. 며칠 전 오지 탐험 프로그램에서도 확인했다. 반 토막 낸 오렌지 껍질에 나뭇가지를 끼워 즉석 국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을 봤다. 번번이 만들어 쓰다가 자연스럽게 편리하게 진화해 오늘날의 스테인리스 국자에 이르렀을 것이다.
내 가방도 명품이란 이름으로 오늘 내 손에 들리기까지 다양한 디자인 중에서 채택됐을 것이고, 다양한 부품 중에서 링이 선택됐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멋있어도 손잡이가 본체와 떨어진 가방은 헝겊 가방만도 못하다. 가방 재료값 중에 링 값이야 값도 아니겠지만 그것이 전부를 무용하게 만들었다.
나는 퍼런 비닐 끈으로 손잡이와 가방의 본체를 묶은 가방을 메고 오면서 처음에는 흉한 게 마음에 몹시 걸렸다. 그러나 기능이 살아나서 그 상황을 그만 잊고 다른 생각을 하며 걸었다.
링 하나 없어서 제 구실을 못하게 생긴 명품 가방처럼 인생에 링이 돼줄 직장이 없어서 무용인물처럼 잠자고 있을 대한민국 인재를 생각한다. 스펙을 잔뜩 쌓은 그들은 손잡이 구실을 못하는 가방이나 손잡이 없는 문짝과 같다. 요즈음 직장을 잡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내 가방의 링은 재능과 일을 엮어줄 조촐하지만 확실한 일터의 상징이다. 그 생각을 하며 나는 자각한다. 명품이니까 명품답게 수선을 해야 한다고. 수선집에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내 가방의 기능을 살려낼 궁리를 한다. 가방은 드는 게 목적이고 젊은이들은 일을 하는 게 목적이 돼야겠다는 생각이다. 마음에 쏙 들지 않아도 본체와 손잡이가 비닐 끈으로 기능을 회복하듯이 저들도 생산한다는 기능을 확보하는 게 우선일 듯하다. 기능을 살려서 원래의 모습과 같아져 흠 없이 되지 않아도  좋다. 나는 가방을 실용적으로 살려낼 궁리를 한다.
집에 와 가방을 거실에 내려놓자마자 내 나름의 결론을 얻고 잡동사니 서랍을 열었다. 무엇인가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아서 이리저리 살피다가 고급스러운 갈색 리본이 눈에 띄었다. 소재가 고급스러운 데다 가늘고 길어서 여러 겹으로 접어서 손잡이와 본체를 묶었다. 묶은 자리는 묻히고 16갈래의 가닥이 나는 장식물이 달린 것처럼 보인다. 기능은 완벽하게 살아나고 장식 효과도 살려 디자인이 만족하다. 어느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성공이다.
잡동사니 일터에서 일과 인연 짓는 것도 능력이라고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오정순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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