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소프라노 김지숙과 바리톤 조승완이 함께 열창하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주는 조동화의 ‘나 하나 꽃 피어’를, 슬픔도 같이하면서 촉촉한 손을 마주 잡고 함께 옹기종기 일어서는 김윤현의 ‘토끼풀’을, 살아가면서 소중하지 않은 때가 어디 있겠느냐고 정현종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을 노래한다.
장 콕토의 ‘산비둘기’처럼 짧은 시는 짧은 시대로 아름답고,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처럼 긴 시는 긴 시대로 멋이 있다.
목부작은 목부작대로 아름답고, 석부작은 석부작대로 멋이 있는 국화의 분재와 같은 것이 시가 아닌가.
안을 수도 만질 수도 포갤 수도 없는 사랑을 왜 시인들은 아름답다 했을까. 눈물을 닦을 수도 없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흔들고, 내 죽으면 한 개의 바위가 되리라는 청마. 그는 끝내 그의 ‘행복’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더 행복하다고 슬픈 결론을 내린다.
청마의 ‘그리움’과 그의 연인 이영도의 ‘그리움’을 대귀로 하여 소리 높여본다. 청마의 그리움이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 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보고 어쩌란 말이냐.

이영도의 그리움이다.

생각을 멀리하면/잊을 수도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월컥한 가슴/ 밀고 드는 그리움

밤은 깊어가고 국화가 불빛에 더욱 황홀하다.
중간 중간 노래를 넣어 4부로 이루어진 낙목한천(落木寒天) 시의 콘서트 대미는 나태주의 ‘멀리서 빈다’와 ‘부탁’으로  끝을 맺는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은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쉬운 시면서도 우리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커다랗게 깨닫게 하는 법문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고향집 감나무에 까치밥 하나까지 더하고 동구 밖 키 큰 코스모스까지 더하여 종합선물세트가 있는 이 가을에는 모두 다 행복하고 아픈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다.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연말이 가까워져오는 이 좋은 계절에는 어려운 부탁일랑 하지 말고, 멀리 가지 말라는 이런 사랑 ‘부탁’이면 얼마나 멋진 것인가.
콘서트를 끝내고 나는 국화터널을 걸어본다. 그 복잡함 속에서도 연인은 팔짱을 끼고, 그 복잡함 속에서도 국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사람들. 박목월의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같은 사람들, 박목월의 산은 구강산 보랏빛 석산에 핀 산도화 같은 사람들. 가고파의 바다에 분수는 불빛 따라 솟아오르고, 국화의 향기에 이끌려 하늘의 별들은 가고파의 바다로 자꾸 내려온다.
국화가 있고, 시가 있고, 노래가 있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곳, 여기는 제17회 마산 가고파 국화축제장이다.
오늘 안주는 장어구이를, 술은 국화술로 물들며 아름다운 시에 흠뻑 취하고 싶다. 사연 많고 곡절 많은 우리를 위로하는 국화가, 가고파의 바닷가에서 저렇게 떨면서도 이 가을을 끝까지 책임진단다.
국화는 겨울의 초입에서 엄동의 서막을 알리는 에필로그요, 시는 계절의 초입에서 김이 나는 온기를 불어넣는 에필로그다.
국화와 시, 우리네 삶이요, 우리네 인생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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