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가을에는 김춘수의 ‘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그에게로 가서 우리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지난 봄이, 지난 여름이, 벌써 그리움이 되는 가을이다.
백두대간을 타고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단풍잎 소리가 요란하다.
저만치 화왕산의 억새가 오후의 햇살에 몸 부비는 소리가 비단결이다.
가을은 계곡의 물을 타고도 흐르고 산의 등줄기를 타고도 흐른다.
가을은 바람을 타고도 흐르고 구름을 타고도 흐른다.
눈으로 한번, 향으로 한번, 맛으로 한번, 세 번 먹는 송이버섯을 화왕산 옥수골에서 먹고, 눈, 코, 입에다 가을을 담고 백일홍 구경을 간다.
낙동강 푸른 물결을 옆구리에 끼고, 청명한 가을 하늘은 머리에 인 채 단일 면적 전국 최고 14만㎡에 백일홍이 피었다. 낙동강 둔치 창령 남지에는 봄날 유채축제로 물들이던 장소를 그냥 놓아두기에는 안타까워 올해는 백일홍을 심어 제1회 ‘창령 낙동강 백일홍축제’를 열었다. 열흘 이상 가는 꽃이 없다고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누가 했던가.
형형색색으로 강렬한 빛깔의 꽃이 백일 동안 지지 않는 꽃이 있으니 백일홍이다. 세월에 있어서는 축복을 받은 꽃인지도 모른다.
인고의 세월에 비해 하루만 꽃을 피우고 순간을 살아가는 꽃들도 많다.
단 하루 만에 꽃을 피우고 종족번식을 위하여 꽃가루를 날리며 생을 마감하는 스텐호페아 난초, 하브란서스, 달개비 꽃, 루 엘리아, 선인장….
어쨌거나 백일홍은 노란색부터 주홍, 분홍, 보라, 하양, 자줏빛까지 빛깔도 다채롭다. 백일홍 꽃들이 강변을 알록달록 물들이며 끝없이 펼쳐지는 꽃들의 향연은 대자연의 파노라마요, 시네마스코프다. 작은 꽃잎들이 겹으로 피거나 겹겹이 쌓여 탐스러운 한해살이의 백일초.
100일이라는 생명마저 짧다고 저토록 아름답고 화려한 것일까. 저 꽃을 피우기 위해 수많은 인내가 필요했으리라. 그러나 고통은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고 했었지.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듯이, 저 꽃도 우리를 위해 고통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저렇게 예쁜 꽃들 속에 예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멕시코의 잡초가 원예로 개발, 보급되어 전세계로 뻗어나갔다는 백일홍의 꽃말은 인연이요, 그리움이다. 세계 곳곳에다 인연을 맺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백일홍. 색깔은 눈 끝에 물들고 향기는 코 끝에 젖어들어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왜 이리 취하느뇨. 백일홍 꽃밭 사이를 두 칸짜리 관광차가 관광객을 싣고 구석구석 달린다.
5,000원인데 65세 이상은 3,000원이란다.
따오기가 있고 풍차가 있고 우산터널이 있다.
낙동강을 옆구리에 끼고 강둑을 달릴 때는 이쪽은 꽃이요, 저쪽은 강이다. 아름다움에는 경계가 없나 보다. 이해인의 백일홍 편지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모든 만남은 생각보다 짧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 부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지금부터 백일만 산다고 생각하면 삶이 조금은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처음 보아도 낯설지 않은 고향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백일홍. 날마다 무지갯빛 편지를 족두리에 얹어 나에게 배달하네. 살아 있는 동안은 많이 웃고 행복해지라는 말도 늘 잊지 않으면서.

한 쪽에서는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태양을 향해 더욱 발돋움하는 해바라기가 눈이 부시다.
여기는 창령 남지 낙동강 둔치, 열차가 달리지 않는 남지철교가 가을을 안고 햇살 속을 달린다. 나도 백일만 살다가 간다 생각하고 열심히 달려야겠다. 나의 인생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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