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설레는 첫 입주.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하는 일은 인생에 여러 번 경험할 수 없는 온 가족의 중대사다.
새 집에 들어가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대부분의 가구와 가전제품들도 새 것으로 장만하고, 때론 수천 만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도 한다. 가정의 중대사이니만큼 수억원의 집값 외에도 막대한 돈이 지출될 수밖에 없다.
입주지원센터를 방문하면 중도금과 잔금 납부는 물론이고, 관리비 예치금 납입까지 모두 완료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집 열쇠를 건네받을 수 있다. 요즘은 아파트 건축과 시설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갖춘 매니저들이 직접 집 문을 열어주고 첨단 시스템에 대해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기도 한다. 이런 절차를 모두 밟은 후에야 비로소 진짜 내 집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 관리비는 후불 정산제 방식으로 부과하는 것이어서 입주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후부터 납부하게 된다.
하지만 관리 전반을 운영하려면 관리비를 걷기 전에도 자금이 필요하다.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처리하고, 관리사무소에서 필요한 각종 집기류와 전산장비 등을 구비하고, 미리 투입돼 일하는 관리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서도 상당한 돈이 소요된다.
이를 위해 입주할 때 내는 돈이 관리비 예치금이다. ‘관리비 선수금’이나 ‘선수관리비’라고도 불려 왔는데, 혼란을 피하고 용어를 통일하기 위해 ‘관리비 예치금’으로 규정됐다.
관리비 예치금은 주식회사의 자본금과 비슷한 성격으로 이미 투입돼 사용됐기 때문에 돌려주지 않는다. 다만 아파트를 재건축하거나 어떤 이유로 허물게 됐을 때 마지막으로 청산하는 형식을 밟게 된다.
살던 아파트를 매매할 때 이를 둘러싸고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집을 사용하기 전에 미리 내고 들어온 돈이므로 나갈 땐 이를 환급받아야 하는데,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에 보관하고 있는 게 아니어서 집을 팔 때 새로 들어오는 매입자에게 받게 된다.
하지만 매입자의 입장에선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도 아닌데 예치금을 내라고 하니 납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관리비 예치금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분란이다.
이런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지금은 관계법령에 근거규정을 마련해 뒀지만, 간혹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입주자가 반발해 소송에 이르기도 한다.(관련기사 1면)
인천지방법원 민사1부는 최근 경기도 부천시의 한 아파트 입주자가 “관리비 예치금은 입주 초기에 필요한 것으로 자신은 납부할 책임이 없다”며 납부를 거부한 것에 대해 관리비 예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판결이 2심이었고,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라는 데 있다. 1심에선 입주시점이 한참 지난 아파트에 입주할 땐 관리비 예치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만일 1심 판단이 확정됐다면 전국의 아파트엔 일대 혼란이 발생할 뻔 했다. 아파트 관리업무가 수익사업이 아닌 이상 돈을 쌓아두고 있는 게 아니어서 예치금을 돌려주려면 다른 가구에 관리비를 더 부과해서 줄 수밖에 없게 된다. 1원을 지출해도 전체 입주민이 부담하는 게 아파트 관리다.
판결을 내릴 땐 그 분야에 대한 현실적 이해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언론도 법원도 아파트 관리에 대해 더욱 세심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