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오래되고 낡은 집에서 생활하다 보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
열 차단에 취약하다 보니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운 것은 기본이고, 비가 새도 대충 땜질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
단독주택만 그런 게 아니라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 아파트가 가진 최대의 강점은 편리함과 단순함 그리고 안전성 등이지만, 장기간 관리받지 못한 상태에서 노후화되면 아파트의 강점은 거꾸로 취약점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의 공동주택 관리제도는 완전하게 이원화돼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을 받느냐(의무관리단지) 그렇지 않느냐(비의무관리단지)에 따라 아파트 건물상태뿐만 아니라 관리제도와 주민 공동체 문화까지 전혀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 중엔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의무’단지에선 관리사무소 설치, 입주자대표회의 구성, 회계기준, 감사규정, 장기수선계획 수립 및 충당금 적립, 각종 용역 및 공사업체 계약 시 사업자 선정지침 준수 등이 모두 ‘의무’지만, ‘비의무’단지에선 거의 다 ‘비의무’다. 장기수선만 가구수 규정이 다를 뿐이다.
관리사무소장 역시 의무단지에선 주택관리사 자격자가 필수지만, 비의무단지에선 그런 자격을 갖출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언론들조차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보도하다 보니 아파트 관리를 둘러싸고 터져 나오는 뉴스들이 아무런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채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관련기사 1면>
의무관리단지에선 구조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비의무단지의 사건사고를 흔한 일처럼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바람에 자신이 뽑은 주민대표와 관리사무소를 불신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대전시 중구의 한 작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2년 동안 5회에 걸쳐 4,500만원을 횡령했다가 사법처리를 받고 있다. <본보 9월 20일자 2면>
이 보도가 나간 지 불과 2주 만에 비슷한 일이 또 드러났다. 이번에도 서울 용산구의 소규모 아파트 소장이 10년이 넘는 장기간에 걸쳐 자그마치 8억원에 가까운 관리비를 횡령한 사실이 발각됐다. 이 소장은 지난 2005년 소장과 경리업무를 겸직하게 되면서부터 돈을 빼돌리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량의 출금전표에 입대의 회장의 도장을 몰래 날인해 뒀다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들키지 않고 거액을 횡령해 더욱 큰 충격을 준다.
장기간 도장관리가 허술한 것도 문제였지만, 정상적인 감사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훨씬 일찍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법망에서 제외돼 있고,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도 무관심한 상태로 방치해 두다 보니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지어진지 30년이 넘은 아파트들은 대다수가 작은 단지여서 거의 대부분 비의무관리 상태로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이들엔 사회취약계층과 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를 비롯한 여러 뜻있는 유관기관과 단체에서 공동주택관리법의 손길이 고루 미칠 수 있도록 의무관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관리비 상승 등의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렇게 탁상공론을 벌이는 동안 서민의 안식처는 점점 황폐화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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