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전 기 택 관리사무소장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거평프리젠아파트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근무한다고 하면 혹자는 부녀회장과 잘 지내야 한다며 걱정스레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일천한 경력이지만 오히려 동대표의 까칠함에 놀란 적은 있어도 부녀회와 그럴 수도 있나 하는 생각이 엊그제 같은데 과연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일이 있었지요. 사람일이라면 대개 그렇듯 이성과의 대면이 평소 원만하다가도 무슨 일인지 오해가 생기면 사소한 일이 침소봉대돼 곤란을 겪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예전 모 아파트 모 여직원이 거침없는 표현을 하면서 나이로 따져 아래인 모 부녀회원에게 뒤로 물러서지 않다가 아무런 문제없는 사소한 일이 발단이 돼 아파트 복도에서 폭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민원 전화를 받고 현장에 갔었을 때는 이미 싸움은 일단락된 상태였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녀회원이 먼저 때려 서로 몸싸움을 했는데도 사건 전개는 직원이 입주민을 먼저 때렸다고 누명을 쓰고 말았습니다.
저 또한 그 부녀회원과 언젠가부터 서로 눈 밖에 난 상태라 우선 그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는데 기어코 나의 허리춤을 잡으려고 좇아오다가 그 부녀회원이 계단에서 엎어진 것 또한 내가 고의로 왼쪽 어깨를 잡아 쓰러뜨려서 상해를 입었노라고 과장된 진술을 해 정식재판까지 1년 여를 무거운 돌을 가슴에 안고 사는 듯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국선변호인 선임 신청을 해 잘 끝내기는 했습니다.
요즘 길거리에서 누가 맞는 것을 보고 적극적으로 말리는 사람도 있지만 자칫 폭행범으로 몰릴 때가 있어 일부 사람들은 내 일 아니라고 그냥 지나쳐 피해자가 병원도 못 가고 크게 다쳤다는 뉴스를 들을 때 조금은 이해가 되지요. 경찰도 제게 말리지도 못할 바에 왜 갔느냐고 답답해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소장이 입주민 다툼을 못 본체 할 수 있냐고 당연하다고 이해해 주는 동대표가 더 많은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다툼과는 달리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정통성 여부를 두고 송사까지 간 일이 있었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아파트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제각각이라서 편을 갈라 나눠질 수도 있는데 그것이 시위로 번져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를 점거하고 용역 직원까지 합세할 때 관리직원들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지요. 이미 끝난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소송을 무시하고 감정적으로 다른 이를 다 물러나게 해야 한다며 새로운 회장단에게 직인 인계를 거부해 아파트 운영은 거의 마비됐고, 우리는 약 5개월 동안 봉급을 받지 못하며 근무한 일도 있었지요.
소장이 중재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재차 소송 판결까지 기다리는 동안 서로 험악한 상태가 빈번한 가운데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이 위태로웠지만 그래도 한 장의 근로계약서는 신분보장의 최소한의 역할을 해줬습니다.
지금도 가끔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관리직원을 다 내보내려고 용역 직원도 동원된 마당에 불가피하게 출동한 경찰관이 제 근로계약서를 보고는 계약기간 동안은 구속력이 있다고 봤는지 명도소송을 해야 내보낼 수 있다고 점거 농성 중인 입주민들에게 알려줘 그나마 무사했던 일입니다.
만약 위탁관리였다면 입주민의 의견을 우선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자치관리는 계약기간만큼은 근로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 민사 사건은 약 10년 전의 회의록과 규약 등을 제출한 것이 주효해 결국 중임위반 사유로 인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이 인용돼 새로운 회장의 손을 들어 줬습니다. 하여튼 입대의와 근로자의 계약도 동행계약서로 변천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 마음으로 잘 대해 준다면 업무의 효율성이 더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애증의 강도도 엷어지듯이 하루가 천년 같았던 그때 그 시절을 뒤로 하고 자치관리 체제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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