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대한민국은 여러모로 특이한 나라다.
짧은 기간 동안 압축성장을 이뤄 선진국 진입을 눈 앞에 둔 경제강국이면서, 한류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문화국가이기도 하다. 땅덩어리가 작고, 인구가 많지 않고, 지하자원도 별로 없는 나라가 이런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은 매우 희귀한 사례다.
그러나 그 이면엔 지독하게 어두운 구석도 있다. 자살률과 노인빈곤율이 세계최고 수준이고 양극화 또한 극심하다. 이들은 별개의 요소인 것 같지만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은 원래 ‘자살국가’가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만명당 자살자 수가 연간 10명 미만으로, 2011년의 31.7명에 비해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1990년대 후반 IMF사태와 함께 중산층이 급격하게 몰락하면서 여기저기서 ‘일가족 동반자살’이란 끔찍한 뉴스가 빈번하게 터져 나왔다. 중산층의 몰락은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를 초래, 이때부터 한국이 ‘자살왕국’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양극화의 칼날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먼저 향했고, 노인빈곤율이 날로 심해졌다. 그게 사상 최악의 노인자살률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한국의 자살률은 10년이 훨씬 넘도록 세계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사회적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는 한, 자살률 역시 쉽게 개선될 수 없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사회적 차이는 날로 심화·고착돼 가고 있다.
부의 양극화는 교육의 양극화를 낳는다. 예전엔 전국 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서울대학교 합격생을 배출했으나 이젠 과학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비롯한 특목고들이 상위권 대학을 모조리 접수한 상태다. 이들 ‘특별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부모는 대부분 상류층이다. ‘돈’의 힘이 ‘머리’의 힘을 압도해 버렸다.
교육의 양극화는 신분의 양극화를 만들어 낸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어떤 학교의 동문은 모두 의사, 판검사, 변호사, 교수 등이고, 어떤 학교의 동문은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지 모른다. ‘가진 자’들의 카르텔이 뚫을 수 없는 ‘계급의 벽’을 형성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돈의 힘 때문에 밤 늦게까지 학원을 돌아다녀야 하는 입시교육의 현실 그 자체가 지옥이지만, 학교 이름이 아닌 ‘지옥고’도 있다. 부의 양극화는 주거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다.
이제 부의 양극화와 신분의 양극화는 한발 더 나아가 ‘감정의 양극화’까지 만들어 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감정노동’이란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처음 이 말이 생길 때만 해도 상담원, 접대원 등 일부 분야에 한정돼 쓰였으나 지금은 ‘갑질’이란 말과 함께 사회 각 분야로 확대됐다. 심지어 ‘슈퍼을’이란 계급분화성 용어까지 탄생했다.
감정노동의 한 복판에 관리사무소장이 있다. 지난달 말 울산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관리사무소장이 목을 매 자살했다.(관련기사 1면) 언론들은 ‘자살왕국’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사건’이라는 듯 무심히 보도하고 넘어갔다.
자살은 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수단이다. 분노와 체념이 극에 달했을 때, 부당함 앞에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극에 달했을 때, 최후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죽인다.
모든 자살엔 원인이 존재한다. 양극화와 극심한 감정노동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한국사회의 자살은 보이지 않는 타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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