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살다보면 너무나 의외라서 잘못 듣거나 본 게 아닌지 스스로 의심할 때가 있다.
최근 공동주택에서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외벽 도장공 추락사’사건이 아닐까?
도장공사는 아파트에서 시행하는 큰 공사 중 하나다. 입찰공고부터 현장설명을 거쳐 개찰과 시공사 선정까지가 한 달 정도 걸리고, 공사계약 후 크랙보수 작업에 이어 물량반입과 본 도색을 하고, 아파트 로고 등 디자인 완성까지 두 달 이상 소요되는 등 전체적으로 3개월 이상 걸리는 대형공사다. 건물 내부 도색과 옥상방수 및 지하주차장 우레탄공사까지 포함되면 기간문제뿐 아니라 생활불편에 따른 주민 민원과 페인트가 날린다는 외부 민원, 그리고 주차전쟁까지 더해져 관리사무소와 경비원들은 몇 개월간 비상상황에 돌입하게 된다.
그래서 몇 년 주기로 한 번씩 시행하는 도장공사 때가 되면 입주민과 입대의 그리고 관리직원들 모두 예민해지고, 간혹 구설에 휘말리기도 한다. 또 투입 물량과 남은 물량에 대한 시비와 작업 인원 및 지체기간 등의 문제로 시공사와 아파트 간 분쟁이 벌어질 때도 있다.
지난 8일 양산의 한 아파트 도색 중 입주민이 옥상 밧줄을 끊어 13층 외벽에서 작업하던 인부가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작업 중 틀어놓은 휴대폰 음악소리가 시끄러워 낮잠을 잘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음악소리 때문에 사람의 생명줄을 끊어버리다니, 또 한 번 눈과 귀를 의심하게 된다. 숨진 사람에겐 아내와 다섯 명의 자녀가 있었다. 밧줄이 끊기면서 일곱 명의 행복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사전에 막기 힘든 피치 못할 사고였다면 아픔과 슬픔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짜증에 의해, 고의로 당한 아빠의 억울한 죽음을 다섯 자녀가 어떻게 이해하고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옥상에 작업반장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이런 참극까진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여러 언론에 보도되진 않았지만 또 하나의 용납할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산의 한 아파트에서 승강기 유지관리업체 소속 직원이 점검을 나왔다가 한동안 차에서 쉰 후 허위점검표만 작성하고 떠났다. <관련기사 2면>
그로부터 나흘 후 한 입주민이 바닥보다 5㎝ 높게 멈춘 승강기를 타려다 턱에 걸려 넘어졌고, 승강기가 그대로 운행하는 바람에 두 다리가 절단되면서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승강기가 바닥보다 높게 멈춘 것도, 두 다리가 끼었는데 문이 열리지 않고 그대로 운행한 것도 모두 부실관리에 의한 인재로 볼 수밖에 없다.
해당업체와 직원은 법에 따른 처벌을 받겠지만 사고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그 직원은 ‘점검 한두 번 빼 먹는다고 멀쩡한 기계가 갑자기 고장날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고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갑자기 일어난다. 우리가 먹고, 자고, 사랑하며, 다투기도 하는, 일상의 거의 모든 생활이 이뤄지는-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도 충격적인 참사가 벌어진다.
아파트 단지가 점점 거대해지고 첨단 기계·전자설비가 많이 도입될수록 사고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밧줄을 자른 사람과 승강기 점검을 빼먹은 기사를 탓하는 것만으론 다른 사고를 막지 못한다.
사고가 늘 모두에게 일어나진 않지만, 유령처럼 해이하고 느슨한 곳을 파고든다.
우연에 우연이 더해져서 참사가 일어난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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