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노후아파트 급증 ‘기왓장 아끼려다 대들보 썩힌다’


기획시리즈 / 위기의 노후 아파트들

대한민국이 늙어가고 있다. 사람뿐 아니라 각종 국가 기간시설들도 함께 늙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를 임기 내 폐쇄하고 이 중 8기는 일시가동중단(셧다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석탄화력발전소는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1위부터 5위까지 싹쓸이 하고 있다. 몇 년 후면 주요 대형 사회기반시설(SOC) 중 30년 넘은 시설물이 20%를 넘게 된다.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신도시에 들어선 아파트들이 곧 30년을 맞게 되며, 전국적으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된다. 특히 소규모 단지들은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
본지는 5회에 걸쳐 위기상황에 처한 소규모 노후아파트들의 실태를 점검해 본다.

 

총 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할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를 ‘중위연령’이라 한다. 1970년 한국인의 평균연령은 23.6세, 중위연령은 18.5세였다.
우리 사회의 평균연령은 2015년 처음으로 평균연령 40.4세를 기록했고, 중위연령은 41세가 차지했다. 인구절벽 시대가 코 앞에 닥쳤다는 지표다. 더욱 큰 문제는 사람만 늙는 게 아니란 점이다. 각종 국가 기간시설들도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는 일반 화력발전소에 비해 2배 이상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성산대교의 차로당 교통량은 일 2만9,000여 대로 한강 다리 중 최고를 기록 중이다. 1980년 건설된 이 다리는 보수·보강이 시급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지난 1월 잠실새내역으로 들어오던 전동차에서 불이 났다. 이 전동차는 기대수명인 25년을 3년이나 넘긴 상태였다. ▲1호선의 노후차량 비율은 무려 40%, 4호선은 470량 전체가 20년이 넘은 상황이다. ▲서울 하수관의 절반인 5,260㎞가 30년을 넘겼다. 묻힌지 너무 오래돼 보수공사조차 쉽지 않다.
우리나라 인프라 시설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수많은 시설물들이 들어섰기 때문에 노후화 역시 대량 발생하고 있다. 댐, 도로, 교량, 철도 등 주요 대형 사회기반시설(SOC) 가운데 30년 넘은 시설물이 2014년엔 2,017개(10%)였지만 몇 년 후면 배가 넘는 4,488(22.2%)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30년 이상 된 댐이 317개(58.8%), 50년이 넘은 것도 185개(34.3%)나 된다. 교량은 560개가 30년이 지났다. 철도교량 110개는 50년이 지났다. 터널도 30년 이상 128개, 50년 이상 30개로 집계됐다. 30년 이상 된 노후시설물 중 C등급 이하가 836개나 된다.
아파트도 나이를 먹는다. 1970~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아파트 건설 붐이 일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초고속으로 건설·보급된 아파트는 불과 반세기만에 1,000만가구를 넘어섰다. 빌라, 주상복합, 오피스텔 등 유형이 다양화되면서 어느덧 국민의 70%가 한 건물 안에서 살고 있다.
1980년대 말 집값과 땅값이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다. 1987년부터 3년간 매년 20~40%씩 급등했다.
“자고 일어나면 수백 만원씩 집값이 불어난다”며 흥청거렸다.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이 신기루처럼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부자들은 춤을 췄고, 서민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다급해진 정부는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1기 신도시의 대표주자 분당과 일산. 1991년 첫 입주가 시작됐다. 그렇게 탄생한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의 아파트들도 이제 곧 30살 안팎의 나이를 먹게 된다. 한 언론조사에 의하면 지은 지 30년이 돼가는 아파트는 1기 신도시에서만 30여만 가구에 이른다. 전국적으로 머지않아 300만 가구를 돌파할 것으로 추산된다.
일반 언론들에선 노후 아파트 문제를 건축년도로만 따지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숨어 있다. 150가구 미만의 소규모 단지들이다. ‘주택관리 법전’이라 불리는 공동주택관리법이 가구 수가 적은 단지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주택관리법에는 건물과 시설의 관리부터 관리비 등에 관한 회계규정, 입대의 등 공동체 생활규칙, 주택관리사 배치 조항까지 세세하게 규정돼 있다. 특히 ‘장기수선계획’은 장수명화에 직접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똑같이 30년이 넘은 아파트라 해도 이 법이 적용되는 ‘의무관리단지’와 그렇지 않은 ‘비의무관리단지’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비교될 만큼 ‘하늘과 땅’ 차이다.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단지들은 급격한 슬럼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노후한 소규모 단지의 입주민들은 영세민, 노년층,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더 많이 거주하고 있어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 고장 나도 고칠 돈이 없으니, 다른 부분까지 더 빨리 망가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의무관리 확대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관리비용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야말로 기왓장 아끼려다 대들보 썩히는 꼴이다.
다음호에선 ‘비의무관리단지’들이 처한 현실의 문제들을 점검해 본다.
【이경석 편집국장】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