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어딘가에 복면가왕으로 바위 밑을 흐르는 물소리가 불후의 명곡이 되더니 전국 백일장을 하던 3·15민주묘지 기념관 앞에도 목련과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그날의 함성처럼 빨갛다. 기념관 뒤편의 언덕에 할미꽃이 참으로 예쁘다. 일부러 할미꽃을 심은 이유는 무엇일까.
연세병원 뒤편에도 상처 많은 사람을 위로하느라 동백과 목련이 홍군과 백군으로 피었다.
조자룡의 성난 청공검으로 막아도, 양귀비의 분첩 옥홍고로 피어나는 점령군의 봄. 눈 뜨면 가야할 데가 있고, 눈 뜨면 해야 할 일이 많은 게 세월인가 보다.
밀봉한 연서처럼 색색거리고 뜨겁게 가슴 뛰던 꽃 몽우리가 개화를 하여 벌써 낙화가 되어 휘날리는 것도 있다.
긴 머리, 단발머리로 여심을 자극하는 헤어스타일처럼 봄바람을 타고 패거리로 피어난 남도의 매화, 산수유가 벌써 떠날 때가 되었나 보다.
시린 가슴을 아직은 달래주어야 하는데 남도에는 지는 꽃들이 많다. 그 수많은 기다림과 그리움을 뒤로하고 떠나려 한다. 양지쪽 진달래가 그렇고 일찍 핀 벚꽃이 또한 그렇다.
꽃 주위를 맴도는 우리는 브레이브걸스의 맴돌이인데, 꽃은 화려한 만큼이나 축제의 기간도 짧다.
임종 3일 전에 자기가 자기 제문을 썼다는 도연명의 자제문(自祭文)을, 저 소하천에 휘날리는 벚꽃은 알고 있는 것일까.
이제 여관처럼 머물던 세상 하직하고, 내 무덤엔 봉분도 만들지 말고 나무도 심지 말고 햇볕과 달빛만 지나가게 하리오. 살아서도 명리를 귀히 여기지 않았거늘 죽은 후에야 그 누가 칭송하며 중하게 여기랴.
영원한 나의 본집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도연명의 자제문.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이별은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이제야 꽃을 피웠는데, 세월이 너무 빠르다.
꽃이 떨어지는 까닭에 잎이 저토록 새파란 것일까.
이형기의 ‘낙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아쉬움이 없을 리 없지만, 낭떠러지에서도 집착하지 않고 온 몸을 던지는 저 꽃잎은 아포리즘이다. 이때쯤이면 동요 ‘종달새의 하루’처럼 우리들도 바쁘다.
하늘에서 굽어보면 보리밭이 좋아 보여 종달새가 오르락내리락하다 하루해가 지고, 밭에서 쳐다보면 저 하늘이 좋아 보여 오르락내리락 하다 하루해가 진다는 종달새의 하루처럼 우리도 바쁘다.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남해바다의 3가지 맛을 다 품고 있다는 삼포밥상은 포만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를 모른다. 겨울이 끝나기를 바라는 박쥐는 동굴의 물방울 소리에 겨울잠을 깨고, 거칠은 산야에 수줍게 핀 야생화가 일몰의 빗살무늬에 숨소리마저 예쁘다. 지방마다의 전국 마라톤대회에 우리가 달리노라면, 곁에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개구리는 개구리를 업고 봄을 달린다.
4월이다. 집 밖을 나가기 좋은 계절이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라는 소동파의 ‘여산’에도 산 속에 있기 때문에 진면목을 모른다고 했다.

횡간성령측성봉(橫看成嶺側成峰)/원근고저객부동(遠近高低客不同)
불식여산진면목(不識廬山眞面目)지연자재차산중(只緣自在此山中)
가로 보면 고개요 모로 보면 봉우리/멀고 가깝고 높고 낮아 모두 다르다.
여산의 참모습을 모르는 것은/이 몸이 저 산속에 갇혀있는 탓인 것을.
꽃들이 빠르게 북상을 하고 있다.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고,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이 분다. 4월은 불변의 다이아몬드가 탄생석이고, 진실한 사랑이라는 아몬드가 탄생화다. 나는 팔공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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