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된장의 효능을 보라. 해독작용이 있어 소화제다. 비만과 변비, 당뇨에도 좋고 심장병과 뇌졸중에도 좋단다. 고혈압, 간 기능 강화, 항암작용, 노인성 치매예방, 골다공증에도 탁월하단다.
영양이 좋으니 정력에도 좋고, 생리활성물질인 제니스테인이라는 요소는 전립선 관련 질환까지 예방한단다.
그 옛날엔 벌에 쏘이거나 불에 화상을 입었을 때도,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 흘러도 된장 한 덩어리 척 붙여 놓으면 명약이 되어 우리들은 베꾸마당을 달렸었지.
세상이 소란스럽고 말이 너무 많다. 이 세상에 가장 진실해 보이고 가장 정직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니 사기꾼이다.
그래야 상대가 속아 넘어가질 않겠는가.
된장국을 보라. 화합은 한통속을 뜻하는 게 아니다.
된장국을 보라. 차이는 분별과는 다르질 않는가.
말이 너무 많으면 장맛도 변한다는데, 말이 너무 많은 요즈음이다.
조선된장의 침묵 같이 믿음 가는 사람 어디 없으랴.
사연과 곡절이 많아도 국민을 위하는 단심이요, 항심인 사람.
수 갈래의 길이 있어도 누구의 편이 아니고 옳은 것을 향한 빛과 소금으로 선심이요, 화심인 사람.
천심은 민심이요, 민심은 밥심이다.
밥상이 차려지고 둘러앉으면 제일 먼저 중앙에 자리 잡은 된장국에 숟가락이 가는 그런 된장 같은 사람 어디 없을까. 된장은 제가 잘 났다고 생색을 내지 않는다. 제 몸이 풀어지고 녹아지고 끓여져도 그 향기를 오래도록 지니기 위해 잘 식지도 않는 못난 뚝배기가 제집이다. 그 어떤 재료에도 구석구석 파고들어 하나가 되어 향기를 풍기는 된장.
된장은 화려한 색깔을 털어내고 끝까지 버티는 마른 가랑잎 같은 색깔로 은근과 끈기다. 된장은 저 민둥산의 사연을 담은 억새의 색깔이며, 저 강가의 숱한 이야기를 담은 갈대의 색깔이다. 눈이 내리고 자박거리는 발자국, 눈이 내리고 사분거리는 이야기, 사랑과 행복의 기준이 달라지는 겨울밥상 위의 된장, 아니 사시사철 밥상 위의 된장.
늘 그 자리에 있고 늘 가까이에 있어 우리들의 오감을 무디게 해도, 어머니 같은 된장국이 있어 겨울 추위도 사랑이고 행복이다. 
의상조사의 법성게에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이 된장을 두고 한 말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 중에 일체가 있고 일체 중에 하나가 있는 것이.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는 것이 말이다.
화려하지 않아 소박하고 요란하지 않아 더욱 담백한 된장국을 나는 좋아한다.
오늘 저녁은 진동 미더덕을 넣고 조개를 넣은 된장국이 입 안에서 향기 품은 바다처럼 출렁거린다.
유명철학관이 40을 못 넘긴다는 나의 수명, 아이들 결혼의 궁합을 볼 때도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없다는 괘가 나왔다는 나의 수명.
제발 아이들 결혼을 다 시킬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한다는 아내의 벼랑 끝 전술이 된장이요, 비밀협상의 은밀한 도박이 된장국이었나 보다. 이쯤 되면 된장국을 잘 끓이는 사람과의 인연도 하늘이 내린 천복이 아닐까.
너무 오래 살면 안 되는데, 오늘 저녁에도 아내는 자꾸 된장국을 끓인다. 이 세상에 기적도 많고 신비도 많지만, 옹기종기 둘러앉아 도란도란거리며 된장국을 먹는 이것이 기적이요 신비가 아닐까.
바다가 되기 위해 아래로 흐르는 강물처럼, 자꾸자꾸 나의 숟가락이 된장국이 있는 아래로 내려간다. 내 인내의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보다. 이성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걸 신비라고 한다면, 된장은 결단코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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