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공동주택은 겉으론 무척 단순해 보인다. 똑같은 모양의 건물을 수십 층 쌓아 올려 여러 동을 복제해 놓고, 그 안에 똑같은 모양의 집들을 만들어 넣었다.
사람들은 똑같이 생긴 집에서 아침이면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엄마 아빠는 일터로, 아이들은 유치원과 학교로 향한다. 간혹 어르신들은 경로당 또는 운동을 위해 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낮 시간 동안 비어 있거나 반려동물만이 애타게 기다리던 아파트는 해가 저물면 다시 모든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공부 또는 TV시청 등 각자의 시간을 보낸 후 잠자리에 든다.
똑같은 모양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패턴마저 유사해서 거의 같은 리듬의 라이프사이클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이렇듯 공동주택의 모습은 외견상 참 단순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복잡하고 난해한 곳이 공동주택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엔 건물과 도로와 조경,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 시설만 있는 것 같지만, 많은 입주민의 안락한 삶을 위해 거대하고 정밀한 시설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그렇게 육중하고 민감한 기계장비들이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살피고 손보는 게 관리업무의 핵심이다. 크루즈 유람선에 탑승한 여행객들이 관광과 유흥을 함께 즐기면서 배 안에서 먹고 자고 놀며 구경하는 동안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많은 선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주하게 땀 흘리며 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입주민들은 아파트 지하에 주차장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입주민의 발길이 닿지 않는 더 깊은 곳엔 공동주택의 기능을 유지하고 입주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수돗물을 담아둔 저수조는 웬만한 풀장보다 넓고 깊어서 처음 보는 사람은 입이 벌어질 정도다. 그와 연결된 부스터 펌프들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며 수십 층 높은 곳의 가구에 물을 공급한다. 만에 하나 펌프가 잘못되면 동시에 수천 가구의 식수 등 생활용수가 끊기는 대란이 일어난다. 관리직원에겐 상상만 해도 끔찍한 대형사고다.
지하엔 또 어마어마한 크기의 발전기가 비상돌격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중앙난방 아파트엔 가정용의 수백 배가 넘는 거대 보일러가 엄청난 열을 뿜어내며 돌아간다. 고압의 수변전 시설은 너무 위험해서 가까이 가기 꺼려질 정도로 위압적이고, 좀 오래된 아파트는 운동장 넓이의 정화조가 원활히 작동해야 입주민들의 시원한 배변활동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중 평상시엔 거의 무용지물에 가깝지만 생명을 수호하는 중요 장비로 소방시설이 있다. 종류도 다양해서 소화설비, 경보설비, 피난설비, 소화용수설비, 소화활동설비 등 수십 가지 장치가 포함된다. 이들 중 하나만 잘못돼도 입주민의 안녕과 재산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평소엔 거의 쓰일 일이 없기에 정기적으로 점검해 작동 상태의 이상 유무를 확인해야만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소방점검을 받은 아파트에서 주차된 차에 불이 났으나 주차장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입은 사고가 있었다. <관련기사 1면>
소방점검은 자격을 갖춘 외부전문가가 수행하도록 관계법규에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재발생 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전기시설이나 승강기시설 등은 정전 또는 고장 등의 경우를 직접 적용해가며 점검하고 있지만, 스프링클러만큼은 직접 가동 시험을 할 수가 없다. 스프링클러 헤드가 열을 감지해 소화용수를 터뜨리면 쏟아지는 물로 인해 광범위한 손상을 입힐 수 있고, 한 번 터진 스프링클러 헤드는 사용이 불가능하거나 재정비에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검에 더 많은 집중과 더욱 세심한 관찰이 요구된다. 다른 기기와의 유기적 연동 상태도 정밀하게 확인해야만 한다.
이번 차량화재 사고로 아파트가 손해를 입긴 했지만 인명피해가 없고, 더 큰 재난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다른 아파트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심각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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