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대한민국 경제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빠져나오려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은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전통적인 보수경제학의 입장에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허리띠를 바싹 졸라매는데도 현실은 점점 더 각박해지기만 한다.
이렇게 답답한 고착상황을 깨기 위해 대두된 방안 중 하나가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물건을 만들어도 소비자의 지갑이 텅 비어 살 돈이 없으니, 임금을 올려 소득이 증대되면 그만큼 소비가 늘고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논리다. 예전 같으면 ‘진보좌파의 허무맹랑한 낭만적 가설’ 쯤으로 절하됐을 이 주장이 요 몇 년 새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보수경제의 본산이라 부를만한 미국과 일본에서 이 논리가 주류를 이뤄가고 있다.
지금은 전임이 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강한 중산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더 높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주에서도 이를 따르는 분위기다.
새로 취임한 ‘괴짜’ 트럼프가 이에 동의할지 아직은 단정할 수 없으나 그가 내건 슬로건이 ‘백인노동자와 중산층의 복원’이라고 볼 때, 하층민을 살리고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라도 크게 반대하진 않을 것 같다.
일본 아베 총리는 지난해 여름 “1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도록 힘쓰라”고 각료들에게 지시했다. 한계에 이른 아베노믹스를 되살리기 위해선 개인소비 회복이 절실하고 이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이 매우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자본주의의 첨병격인 IMF(국제통화기금)조차도 150개 국가의 사례분석 보고서를 통해 “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1% 증가하면 이후 5년간 경제성장이 연평균 0.08% 줄어들고, 반대로 하위 20%의 소득이 1% 늘어나면 그 기간에 연평균 경제성장이 0.38% 증가한다”고 밝혔다. 소득주도 성장론을 명확히 하면서 동시에 하위층에 대한 소득 증가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IMF는 구체적으로 ‘더 나은 한국을 위한 정책보고서(Better Policy Korea)’를 통해 “한국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대기업 위주의 수출정책과 이를 통한 낙수효과가 한계에 도달했다”고 충고한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적으로도 경제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모두 함께 잘 살기 위해선 아프더라도 전복적이고 획기적인 수술을 단행해야 할 기로에 선 것이다.
한국의 대선주자들도 대부분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주장하거나 동조하는 분위기다. 유력한 보수 주자의 한 사람도 “재벌이 주도하는 경제는 이제 약효가 다했다”고 말할 정도다.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 대기업들이 감원에 나설 것”이라거나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의 현실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폭탄투하나 마찬가지”라는 반론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침체한 상황에선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한민국의 아파트에선 최저임금 인상이 ‘독’이 돼가는 느낌이다. <관련기사 1면>
특히 최근 몇 년간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률이 단계적으로 올라 100%에까지 다다르자 경비원을 감원하는 아파트들이 크게 늘고 있다. 5~6년간의 통계가 정확하게 집계돼 봐야 알 수 있겠으나 꽤 많은 경비원들이 점진적으로 쫓겨났다. 거기에 더해 남은 경비원들에겐 급여인상 폭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휴게시간 늘리기가 성행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아야 6시간 정도이던 휴게시간이 최근 8~9시간까지 급격하게 늘어났다.
본지 취재 결과 휴게시간만 늘었을 뿐 실질적인 휴식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입주민들의 안전이다. 50%의 가산수당이 붙는 야간 근로시간(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에 휴게시간이 집중돼 있어 ‘심야보안’이 점점 허술해지고 있다. 당연히 강력사건과 재난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입주민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 소득이 늘길 바란다면 내가 사용하는 사람의 급여 인상 역시 당연하다. 관리에 쓰이는 돈은 불필요한 낭비가 아닌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가다.
평화로운 밤은 대가없이 영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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