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무봉사 태극나비
신라 말 국운이 기울어 사회 혼란이 가중되던 어느 해, 고려 태조 왕건이 삼한을 통일하기 직전 후백제 견훤과 밀고 밀리는 격전을 거듭하고 있던 시기였다. 어느 날 춘삼월도 아닌 2월에 갑자기 한무리의 나비가 떼를 지어 날아와 무봉산(아동산)을 뒤덮으며 날아다니다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괴이한 일이 있었다.
무봉사를 감싸고 날아다녔던 나비의 날개에는 태극무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이상하게 여겼다. 당시 통일신라는 국론이 분열되는 등 모진 혼란에 휩싸여 있었던 때라 사람들은 어떤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생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가 건국되면서 어지럽던  사회 혼란은 멈추고 마침내 태평성대를 맞게 됐다고 한다. 그 후에도 가끔 이 태극나비가 무봉산에 나타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라에 경사가 있었다. 그래서 고려 초에는 이 나비를 보호하라는 왕명과 함께 국성접이라 부르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비는 조선조 500년과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가 1945년 8월 15일 오후 3시쯤 태극나비가 무봉사 법당에 날아들었으며, 그해 8월 19일과 10월 25일에도 각각 나타났다고 하며 그래서 무봉사를 참배하고 나면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고 전해진다. 이 태극나비의 전설은 표충비각의 땀과 밀양 얼음골의 신비, 만어사의 어산불영경석과 함께 밀양의 4대 신비의 하나로 전해져 왔다.
무봉사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우리 중생이 살아가는데 경계가 되는 좋은 말씀들이 나열돼 있기에 하나하나 읽어보고 감명 깊은 몇 구절을  소개할까 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서산대사(1520~1604)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들 무엇하리./ 부싯돌 번쩍하듯 찰나에 사는 몸/ 부귀빈천 주어진 대로 기쁘고 즐겁거늘/ 입 벌려 웃지 않는 이 바보로세.
-백거이(772~846, 중당시대 시인)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여/ 가보지 못했을 때는 천만 가지 한이었는데// 가서 보고 돌아오니 별다른 일은 없고/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었네.
-소동파(1036~1101, 중국 북송시대 시인)

그 모두가 비움과 버림의 바탕이 되는 마음공부에 기초하고 있는 것을 우리들도 단박 알 수 있는 시다. 원래 시는 쉽게 쓰는 것이 어렵고 어렵게 쓰는 것이 쉽다는 말이 있다. 이는 얼마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느냐 그것의 중요성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무봉사에서 넘실대는 남천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순간이나마 머리가 맑아지는 듯 하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훨훨 창공을 날아가는 듯 했다.
저녁을 여유롭게 먹고는 영남루 야경을 나왔다. 밀양교 중간쯤에는 촬영을 위해 좋은 자리까지 마련돼 있었다. 어두워야 별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듯 밤에 보는 영남루는 환상으로 보는 별세계를 보는 듯 했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