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93호
773년(혜공왕 9)에 법조가 영남사의 암자로 창건했다는 무봉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97㎝의 앉은 불상이다. 네모난 얼굴에 가는 눈과 입, 넓적한 코, 짧은 목 등이 다소 평면적으로 표현됐으나 전체적으로는 단정한 인상이다. 부처의 빛을 나타내는 광배는 두 줄의 볼록한 선으로 머리의 빛과 몸의 빛으로 구분됐고, 안에 넝쿨과 연꽃을, 밖에 불꽃을 아름답게 새겼다. 다시 정면에는 다섯의 작은 부처를 새겼고, 뒷면에는 드물게 약사여래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광배 뒷면에 불상이 새겨진 것은 경주 남산의 미륵곡석불좌상에서 보이는 정도로 드문 예다. 한 개로 된 사각형의 대좌에는 두꺼운 연꽃무늬가 단순하게 새겨졌다. 부처는 단정하고 양감 있게 표현됐으면서도 법의의 주름이 간략해지고 광배의 꾸밈이 화려하고 복잡해진 것으로 봐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미술사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닌 눈으로 보는 감상이 전문가의 감식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서당 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말과 같이 자주 답사를 하다 보면 그럴듯하게 보이기도 한다.

◈밀양 무봉사와 진해 천자봉의 전설
전설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 신라 혜공왕 때 법조라는 한 도승이 밀양의 무봉사를 세울 당시 일이다.
하루는 선사가 급한 용무로 뒷간을 갔더니 호랑이가 뒷간 앞에 있는지라 다른 곳에서 용무를 마쳤다. 그런데 이날 밤 또 뒷간을 갔더니 이번에도 호랑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화가 치민 선사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호랑이의 이마를 쳤더니 이마에서 흰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고 호랑이의 몸은 사라져 버렸다. 선사는 흰나비를 따라 나섰다. 나비는 새벽녘에 어떤 산봉우리에 앉았다. 흰나비의 동정을 지켜보니 이번에는 날아서 산 아래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을 찾아들어가니 슬하에 자식이 없는 쉰살 가량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간밤에 매우 이상한 꿈을 꿨다. 선사가 두 사람의 꿈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꿈의 내용은 간밤에 선사가 겪은 흰나비와도 관련이 있는 꿈이었다.
이윽고 선사가 “열달 후 소승이 다시 찾아 주인장에게 청을 하나 드리겠으니 절대로 청을 거절하지 마시길 약조해 주십시오”하고 떠났다.
열달 후 이 집의 부인이 해산해 사내를 낳았다. 그날 아침 약속대로 선사가 찾아와 “이 아이는 액이 있어 이 집에 있으면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이니 소승이 데려가 길러야 하겠으니 맡겨 주십시오”하고 청했다.
주인 부부는 선사에게 아이를 맡겼다. 아이는 절에서 공부와 무예를 닦았다. 이 아이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달랐으며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항상 왼쪽 주먹을 꼭 쥐고 있는 버릇이 있었다. 놀 적에도, 잠잘 때에도 왼쪽 주먹은 펴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선사는 아이가 잠든 틈을 타 왼쪽 주먹을 펴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의 손금에는 삼(三)자와 일(一)자가 뚜렷한 왕(王)자의 손금이 선명한 게 아닌가?
그런데 아이가 벌떡 일어나 절간이 떠나갈듯 일갈을 했다. “에잇! 요사스러운 중놈아! 내 여태 감추고 있던 비밀을 어느새 네 놈이 눈치를 챘구나. 그렇다면 내가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 말을 남기고 절간을 나간 아이의 행방은 묘연했으며 뒷날 이 아이가 중국으로 건너가 천자가 됐다 하고 그런 연유로 부부가 살던 뒷산 봉우리를 천자봉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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