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천차만별의 악성 댓글이 줄을 이어도 잘못된 만남이 찰떡 호흡이 되어, 눈길 하나로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드라마도, 연극도, 영화도, 인생도….
세상이 시끄러워도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고 약간은 무디게 사는 것도 5만가지의 건강 염려증에 좋은 치료약일지도 모른다.
술수와 당리당략, 수지타산과 이합집산의 막장드라마가 정치의 생리라 해도, 그 정치가 있어 민주공화국이 앞으로 나아가고 평균 수명이 자꾸 자꾸 길어지나 보다.
그래서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당신의 정치후원금이 큰 힘이 되며,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격려이자 사랑이라고 홍보를 하나보다.
민초가 잡초라면 잡초가 어찌 낫을 두려워하겠는가.
가만히 제 자리에 서 있는 잡목, 잡초가 있어 저 산이 저토록 푸른지도 모른다.
광장의 촛불을 등에 업고 한탕을 노리는 기회주의자, 분노를 유발시켜 갈등을 부추기는 변절자야 설마 있으랴만, 지금의 격동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자극적 선동적인 말들이 난무하고 졸지에 돌연변이가 생기고, 이판사판 작두 위에서 춤을 춘다 해도 결국 하나로 돌아가는 법계와 중생계는 차별이 없다고 했거늘.
되기 시끄러울 땐 차라리 ‘기차와 소나무’의 노랫말처럼 고요히 눈을 감자. 기차가 서지 않은 간이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기차가 지날 때마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살기(殺氣)를 없애고 귀신을 물리친다는 삽살개가 죄 없는 낮달을 짖어대고, 들통 난 외도가 하늘의 이치를 따지며 재앙의 출구를 향해 적토마처럼 달리는 12월.
판도라의 뚜껑은 자꾸만 열려 광장은 시끄러운데 포세이돈의 천마 페가수스는 멀리에 있고, 슬픈 오르페우스의 하프도, 정의의 여신 디케도 멀리에 있지만, 매우 반짝이는 루돌프 사슴 코가 선물을 안고 어느 눈 내리는 비탈길을 사정없이 달려 내려온다.
올해의 마지막 강의, ‘웰다잉과 실버의 성’이라는 주제로 자산동 주민자치센터 2층 강당에서 고령은 노령이 아니라며, 장석주의 ‘대추 한 알’로 시작하고

저게 저 혼자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남녀 평균 82세가 넘도록 살 수 있다는 장수의 시대에, 웰다잉은 치료 포기가 아니라 건강 돌봄에 우선을 두는 거라고, 본 정신이 있을 때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향서를 쓰고, 시간이 있을 때에 갑작스런 일을 대비하여 유언장을 써두는 것도 지혜이며, 실버의 성(性)은 마음의 생기이고 존재의 원료이며 행복의 출발이라고 두서없이 떠들고는 치매와 우울증 예방을 부칙으로 달고 김윤현의 ‘토끼풀’로 마무리한다.

삶이란 원래 자잘한 걸
삶이란 처음부터 일상적인 걸
촉촉한 손을 내밀어 꼭 잡아주면 이렇게 행복인 걸
세 잎이면 어떻고 네 잎이면 어떠리.
바람이 불면 같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 끝에 오는 슬픔도 같이 하면서 함께 일어선다.
옹기종기 옹기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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