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한파가 몰아닥치며 소설이 지나고 첫눈이 내리고 대학입시 설명회장이 북적이고 해안도로의 가로수 은행잎이 갈 길이 바쁘다는 듯이 앞 다투어 잎을 떨구니 병신년의 마지막 달이다.
지록위마(指鹿爲馬)니 혼용무도(昏庸無道)니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니 해대며, 다사다난이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향해 몸부림치며 달리는 마지막 달.
삶의 지층에서 꽃으로 잎으로 만났던 결 고운 저마다의 이야기가 마무리를 향해 달린다. 하늬바람 불어오면 엄마가 달랠 때 그치지 않았던 긴 울음도 잦아들고, 바람 불고 차가울수록 각각의 덕장마다 위작도 표절도 없는 진여의 즐거움이 고드름 되어 주렁주렁 달린다.
황태가 되고, 과메기가 되고, 시래기가 되고, 곶감이 되는 비밀이, 춥고 바람 부는 빙하기와 따뜻한 해빙기를 수없이 거쳐야 된다는 거기에 있었구나.
한파주의보, 강풍주의보가 내려도 엄마의 검정고무신 엿 바꿔먹고 자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치기를 하면 행복이 되던 그 옛날 비밀도 추위에 있었구나.
첩첩산중의 꽝꽝나무가 먼데서 꽁꽁 얼어붙기 시작하면 아파트의 관리소마다 월동준비가 분주하고, 김장을 서둘러 끝낸 남도의 해풍은 불어 문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을 막는다고 문풍지를 바르는 12월.
그래도 사랑은 낮은 곳에 있다고 저만치 쏠려가 구석진 자리에 떨고 있는 가랑잎 위로 천사의 날개처럼 햇살이 쏟아진다.
묘사 때에 만난 합천 아재가 생강 값이 폭락했다고 울상이라도, 좋은 데이 소주 앞치마를 곱게 차려 입어도 좋은 날이 없다고 실비통술 숙자 아지매가 속을 끓여도, 논밭으로 창문으로 노란 햇살이 내려앉는다.
연말연시 음주운전 특별단속이 불을 밝히면 밤 밭 고개 ‘바르게 살자’의 표지판 옆으로 질서를 지키는지 무슨 차가 이리도 밀릴까.
인곡 공원묘지 가는 길 옆 노인요양원에 차량이 많은 걸 보니 이 해가 가기 전에 사랑의 문안 인사인가 보다. 
웃을 일이 별로 없는 병신년의 긴 여정에 방점 하나 찍을 게 있다면 그래도 사랑이요, 작고 보잘 것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또한 손을 잡는 사랑 말고 무엇이 있으랴.
정치인의 계산기가 난장처럼 요란하고, 매스컴의 호들갑이 내림굿의 대나무처럼 휘몰이로 나부대고, 찧고 까부는 진실공방의 특종이 삼류도색잡지처럼 아수라가 되어도, 빨간 사랑의 열매가 훈기를 더해 수은주는 올라가고, 까만 연탄이며 붉은 김장김치가 낮은 곳을 향해 사랑을 실어 나르는 12월.
오늘은 살아온 날의 마지막 날이며, 살아갈 날의 첫날이라고 2017 정유년 달력이 하얗게 미리 달려와 고동치고 출렁이며 희망을 속삭인다.
성당의 십자가에도 교회 정문의 트리에도 크리스마스가 오고 세모가 온다고 불빛이 은하처럼 반짝이고, 이월상품이 90% 할인이라고 고래고래 목청을 돋우는 병신년의 끝자락.
사랑해서 그리웠다는 사연을 하늘에다 길게 적고, 진한 오열로 석별의 잔을 천천히 드는 마창대교의 저 붉은 노을은 화엄경이다.
가는 해가 아쉬워 창원 성산 아트홀에서는 김건모가 ‘핑계’, ‘잘못된 만남’, ‘아름다운 이별’, ‘미안해요’, ‘서울의 달’을 노래하고, 김경호가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금지된 사랑’, ‘아버지’, ‘사랑했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벌써 열창했단다.
협력이 함정이 되고 동의가 복선이 되는 아이러니도 많지만, 억조창생이 머물다 떠난 이별가는 모두가 사랑가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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