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날씨가 좋아지니 청첩장이 날아든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그들에게 좋은 소식이므로. 아직도 결혼할 인연을 만나지 못해 고뇌하는 대한민국의 나이든 청춘들이 생각나는 것은 이미 우리 세대에 나도 노처녀였기 때문이다.
막연히 나이가 차면 결혼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일구월심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내 인생을 넘보는 사람도 있고 월급이 넘친다고 생각하면 인연인듯 밀어붙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혼만은 한번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나로서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이어 오는 것은 결정 장애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멈칫거리다가 복잡해지면 만나던 인연의 줄을 놓아버린다. 한동안 홀가분해져서 솔로의 가벼움을 즐기다가 1년 또 1년이 지나가면서 나는 나이가 든 처녀가 됐다. 
한 마디로 지나치게 완전하고 싶은 욕구가 결정 장애를 부르는 셈이다.
결정 앞에서 결정한 후 그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진다는 단호함을 가진다면  망설임은 줄어들고 진행하려던 일은 진도가 빠르다.
누군가와 상담을 해주느라고 전화를 하다보면 하던 이야기가 반복되고 본인 스스로 고뇌의 과정을 거쳐 포기할 것과 잡을 것을 분별해보고 신중하게 생각을 정리해본 다음에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말만 반복하고 죽는 소리를 이어간다면 도울 수가 없다. 말을 들어주는 사람의 친절한 기를 빼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장애는 바로 자신감이 없어서 선택을 두려워하거나 조금도 손해보고 싶지 않아서 이기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다양한 것들의 장점만 취하려고 드는 사람은 불평이 잦고 어떤 선택을 하고나서도 불만이 따라붙는다. 타인의 선택은 타인이 누릴 것이고 자신이 선택한 것은 자신이 누린다는 것을 놓치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조건 아래서는 받아들이는 힘을 가진 사람이 능력자고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돌아서거나 멀어져야 한다. 본인은 생각과 행동을 바꾸지도 않고 세상 탓하고 남 탓하는 사람이 된다. 선택한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 선택의 기능 보유자가 된다.
개인이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마저도 타인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연에도 합이 드느니 아니니 하는 말을 한다. 무엇인가를 결정하지 못해서 상담을 통해 자신의 의견에 동조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성향대로 세상이 움직여 주는 줄 알고 끌탕을 하다가 자기 연민에 빠져 버린다. 냉철하게 생각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별하고 비장한 각오로 선택해 얻은 결론일 때는 결정 이후만 생각해야지 잘한 일인가 못한 일인가 되짚을 이유가 없다. 물러서고 되돌아보며 후회하는 동안, 세월은 저만치 가 있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은 자기만 상처낸다.
혼기가 된 자녀를 뒀거나 당사자들은 결혼도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걱정만 할 게 아니라 인연을 찾아나서야 하고 관계맺기의 학습도 진행해야 하고, 어려운 결정도 내려야 하고,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였을 때는 자신이 정한 가치에 따라야 하는데 주변인에게 조건만 중요시하며 휘둘리거나 소심한 자기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혼이란 수렁이 나 환상이 되고 만다.
나는 누군가를 보호하고 아껴주고 자상하게 챙겨주고 싶은 열망이 강해서 결국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 오늘까지 살아왔다. 왜 보호받고 사랑받고 조금은 남모르게 어리광 부리며 살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맏딸의 주기능이 부모님을 보조하고 동생들을 보살피고 안내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그러한 기능이 자라게 된 거였다.
결국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성격이 만들어진다. 그 성격이 운명이 돼 자기 짝을 만나게 되며, 살면서 인생에 질문이 던져진다. 그 답을 얻으려고 수고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서 살아볼 가치가 있고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다.
어느덧 내 글에도 단풍빛이 어린다. 확실한 가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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