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아래윗집 남자들이 국선도 도장에서 소풍을 갔다. 아래윗집 여자들의 가슴은 술렁댄다. 긴 시간 동안 혼자가 되는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궁리를 하다가 윗집 여자는 곧 행동으로 들어갔다. 요즘 들어 머리에 염색을 한다거나 얼굴에 마사지를 하는 행위가 왠지 쑥스러워서 남편이 없을 때 슬쩍 하고 싶어졌다. 텔레비전에서 꿀피부 미인 운운하며 그림 같은 여인들이 화사하게 웃고 있으니 아직 주구렁이 할매는 아닐지라도 아름다운 피부를 갖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터라 얼른 꿀에 우유를 넣고 개어서 얼굴에 발라본다. 미처 다 바르기도 전에 아랫집 여인이 영화보러 가자고 한다. 시간을 확인하지도 않고 약속을 잡았다. 15분만에 작업 완료하고 집을 나섰다. 그날 시간대가 맞지 않아 보고싶은 영화를 놓치고 ‘위대한 소원’이란 영화를 보았다. 선택하게 한 동기는 ‘위대한’이란 수식어 때문이었다.
세 젊은이들의 우정을 코믹하게 다루면서 청소년들의 우정을 바탕으로 섹스에 대한 것을 건드리고 있다. 건강이 악화돼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친구를 위해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인데 그 소원이 바로 ‘섹스를 하고 싶다’였다. 죽음을 앞둔 청년의 소원이라 절박하지만, 해결해가는 방법이 웃음을 생산한다. 스토리야 그렇고 그렇다 치고 이 영화에서 왜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붙었는가를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자기 확대와 성장의 본능적 욕구가 있는데 가장 욕구의 밑바닥에 성의 본능이 깔려있으며 그 힘은 다른 성장에 작용되는 힘과도 같다. 엄밀히 말하면 신에게 사람이 처음 받은 축복이 ‘성’이다. 성서의 창세기에 신이 인간에게 ‘번성하라’고 축복해준다. 성이 개입되지 않고 번성할 수 없으므로 신의 첫 축복이다. 그 축복을 수행하고 가고 싶어 하는 주인공 청년의 소원은 남자로 태어나서 위대한 과업을 치르고 싶은 거였다. 팔다리가 마비돼 있는데도 남성의 ‘거시기’는 시도 때도 없이 서서 몽정으로 끝나고 청년은 그것이 무안해 소변으로 처리하는 안타까움을 친구에게 고백하고 그 괴로움을 전혀 낯설지 않게 슬픈 웃음을 깔고 코믹 영화는 진행된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청년이 어른으로 죽고 싶다는 고백이 반드시 성적욕망의 해소 욕구로만 들리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가장 원초적인 생명활동을 하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나름의 완성을 보고 싶다는 욕망 또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종적 선택이다.
사람이 갖고 있는 욕구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자연발생적 성장의 욕구라 한다. 모든 사람들은 더 낫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성적인 욕구나  창조욕구와 같은 리비도(libido)와 맥락은 같다. 리비도가 강한 사람이 성에 대해서나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살아있는 동안 마지막까지 남아 활동하는 욕구다.
각설하고, 이 영화의 루게릭 환자인 청년이 살아있는 욕구를 해소하고 싶어하는 심정이나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려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꿀과 우유를 바르는 노인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시인으로 한 획을 그은 노 시인의 마지막 행업이 바로 패션 앨범을 낸 일이다. 평소의 영적 활동에 치중된 삶에 비해 그 작업은 상당히 놀란 일이었다. 하지만 시업에 집중해 두각을 드러냈는데 아마도 내면에 하고 싶어한 일 중에 연기나 모델의 일도 남겨뒀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87세 노인이 다리를 사용하지 못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성형에 대한 방송이 진행됐다. 옆에 있는 딸들에게 자신의 코도 높일 수 있느냐고 너무나 진지하게 물었다. 평생 아름답지 않은 게 한이 됐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진정으로 들어주고 싶어 문의를 해봤다. 그러나 노령이라 마취가 위험하다고 했고 그대로 전한 적이 있다.
타인이 보기에는 지나치고 추한 욕구같지만 섹스를 하고 싶은 욕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는 남겨놓은 ‘위대한 소원’일 수 있다. 그 소원은 역사상 언제나 있어왔고 은밀히 진행되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뿐이다. 아무도 자신의 변화를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두려움으로 남겨 두기보다는 할 수만 있다면 감춰둔 욕구를 무리하지 않게 해소해가며 나이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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