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일기 98


 

입대의 최 병 용 회장
경기 청평 삼성쉐르빌

필자의 군대 동기들 중 장기복무를 마치고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는 동기들이 많다. 그들과 아파트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적잖이 있다. 비슷한 근무 여건과 아파트란 동일 공간에서 근무하는 관리사무소장이란 직책을 같이 갖고 있지만 직업관, 가치관 등에서 생각 차이가 많이 나 놀라곤 한다.
A 동기는 관리사무소장의 교본 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근무자세가 훌륭하다. 전형적인 솔선수범형, 진두지휘형 지휘관에 해당한다. 직원들 위에 군림하기 보다는 인사를 잘하지 않는 경비원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그들을 포용하려고 노력한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1시간 전 출근해서 단지를 순찰하고 그날 업무 지시에 활용한다. 심지어 긴 연휴에도 매일 단지에 출근해서 근무하는 직원의 점심을 사주고 단지를 순찰하며 연휴에도 단지에 문제가 없도록 살핀다. “연휴가 끝난 후에 해도 될 일을 굳이 휴일에 출근해서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파트가 오래 돼서 연휴에 발생하는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연휴 후에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발생해서 곤란하다. 아파트 입주민들에게서 월급이 나오기 때문에 입주민들이 생활하는데 조금이라도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휴일에 출근 하루 더 한다고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 관리사무소장이라는 일이 즐겁고 내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다”라고 얘기한다.
“한번은 아파트 지하에 배수관이 막혀 하수가 역류하는 일이 벌어졌다. 직원들이 서로 꺼려하는 것 같아 내가 막힌 배수관을 직접 뚫어 오물을 뒤집어쓴 적도 있다. 온 몸에서 하수구 냄새가 나니 심지어 집에서도 박대를 받았다”고 했다. “직원들을 먼저 시키지 왜 직접 소장이 나서서 그런 일을 하느냐?”고 질문하자 “직원들은 그런 일을 시키면 마지못해 하면서 기분이 상하고 추가적인 보상을 원한다. 소장이 직접 하면 그런 부차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지난여름 장마 때, 지하실에 물이 차서 누전이 됐는데 직원들이 감전을 우려해 아무도 들어가려고 안했다. 소장인 내가 직접 절연장화를 신고 들어가 문제를 해결했다”고 했다.
B 동기는 부하들을 활용하는 행정형 지휘관 스타일이다. 관리사무소는 ‘입주자대표회의의 2중대가 아니다’며 사사건건 동대표들과 갈등을 겪고 이를 무용담 삼아 자랑을 한다. 심지어 관리사무소장이 하는 일의 90%는 ‘법리 검토’라고 이야기한다. 법리 검토는 법을 다루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아파트 시설을 잘 보존하고 입주민들이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책임을 지는 관리주체의 대리인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준수해야 할 관리사무소장이 견지해야 할 자세는 아닌 것이다.
‘입대의 의결사항을 법리적으로 검토해서 추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할 수 있지만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법과 규정의 잣대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더 많다. 굳이 법과 규정을 들이대지 않아도 될 성격의 일들을 규정을 들먹이며 일을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일을 하려는 입대의나 자생단체의 의욕을 꺾어서는 안 된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권한을 남용해 부정한 공사를 강행하거나 아파트 각종 자금을 용도 외에 사용하려고 할 경우 등에는 공동주택관리법을 검토해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납부할 수 있음을 조언하는 등의 역할은 필요하다.
아파트에서 관리사무소장의 역할은 입주민을 위해 봉사하고 아파트 시설들을 관리하는 것이 90%로 주된 임무를 차지해야 한다. 90%의 법리검토 후 남은 10% 노력만 기울여서는 올바른 관리가 이뤄진다고 볼 수 없다. 행정업무는 경리주임이 하고, 민원처리나 간단한 공사는 밑에 있는 기사들이 하니 할 일이 없다. 소장의 지시니까 마지못해 일을 하지만 직원들은 불만이 쌓이게 된다.
A 동기는 입주민들을 계도할 공고문을 직접 만들어 게시한다고 한다. ‘방귀 낀 놈이 성 낸다’고 자신이 잘못한 입주민들도 공고문을 보면 기분 나빠하고 관리사무소에 와 행패를 부려 자신이 직접 만들어 게시한다고 한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가진 수준과 관심만큼 관리사무소장도 수준이 달라진다.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에 관심이 없으면 관리사무소장은 사무실에서 법리검토만 할 것이다. 반대로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를 자주 방문하고 개선 요구를 하면 관리사무소장은 뛰어 다닐 수밖에 없다. A 동기 같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명감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는 관리사무소장을 만나는 것은 아파트 입주민으로서는 정말 행운 중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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