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충남도청이 있는 곳은 홍성이다. 전엔 대전에 있었지만 대전이 광역시(과거 직할시)로 승격해 행정구역이 분리되면서, 도청 이전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자 많은 논의 과정을 거친 끝에 2012년 말 홍성으로 이전했다.
지난 21일 아침. 충남도청 본관 6층 회의실에 9명의 외부인이 모였다. 이들 중엔 다른 지방에서 온 공동주택 관리 전문가인 주택관리사와 건축 전문가인 건축사가 있었고, 대학교수와 연구원 등 학계와 산업계 대표, 그리고 언론도 함께 했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 자리에서 그들의 직함은 하나였다. 바로 ‘그린홈 으뜸아파트 선정위원회 심사위원’이다.
국토교통부에서 시행 중인 ‘우수관리단지 선정’의 모태가 된 게 충남의 으뜸아파트다. 모범 단지 뽑기의 원조인 셈이다. 좀 의외(?)이긴 하지만 충남은 공동주택 관리 부문에서 좋은 정책들을 발굴하고 적용하며 타시도보다 선도적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날 심사위원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신청 단지의 응모서류들을 꼼꼼히 체크해가며 늦은 저녁까지 씨름했다. 저녁을 김밥으로 때우면서도 혹시라도 좋은 아파트를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눈에 불을 켜고 심사에 임했다.
한편 경기지역 아파트들은 올 한 해를 ‘치욕’으로 기억할 듯하다. 경기도는 연초부터 빅데이터를 통해 비리가 의심되는 단지들을 추려냈다. 그 빅데이터란 게 사실은 k-apt(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올려진 자료들인데 본지는 이미 수차례 이 시스템의 비합리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어쨌든 이를 통해 556개 단지가 의심되는 것으로 나왔고, 경기도는 조사 결과 역시 이들 모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경기지역 아파트들은 이 명단에 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고, 불명예스럽게 명단에 든 단지들은 의심되는 부분을 소명하기 위해 지난 봄부터 과거 자료들을 뒤지고, 전임 소장과 입주자대표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하느라 관리를 뒷전에 내팽개칠 수밖에 없었다.
경기도는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12일, 도지사가 직접 나서 도내 수백 개 아파트 단지에 부정과 비리가 횡행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브리핑했지만, 이 ‘식상한’ 뉴스는 애석하게도 경주 지진 사태에 묻혀 곧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부정과 비리는 당연히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므로 경기도가 올해 내내 벌인 노력을 굳이 폄하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차갑기만 하다. 냉담하다 못해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충분히 소명한 부분까지 지적사항으로 기록하는 등 조사관들의 태도에 문제가 많았다는 얘기들이 돈다. 문제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지적하려는 모습이었다고 분통을 터트리는 관리자들도 있다.
경기도의 브리핑과 보도자료를 받은 언론들은 또 한 번 ‘펑펑새는 관리비’란 제하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큰놈 한 건을 피라미들과 엮어 침소봉대하는, 늘 봐왔던 지긋지긋한 제목이다. ‘아’다르고 ‘어’다른 법이거늘….
겨울은 아직 멀었는데 경기지역 아파트들은 동토의 왕국이 돼 버렸다.
충청남도 으뜸아파트 심사위원들은 이튿날 응모 단지 현장실사에 나섰다가 놀라운 경험을 했다. 관리사무소장과 주민대표뿐만 아니라 부녀회와 노인회, 일반 입주민들까지 마당에 나와 환영인사를 전하며 하나 같이 자기 아파트 자랑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은 으뜸아파트에 뽑히기 위해 몇 년을 준비했으며, 일 년 사시사철 얼마나 활발한 공동체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 바깥의 불우이웃과 소년소녀가장, 홀몸노인과의 인연맺기 등을 자랑하며, 우리 아파트가 얼마나 화합과 웃음이 넘치는 단지인지를 선전하느라 심사위원들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이웃 단지가 뽑힌 걸 보고 자극받아 더 좋아지려고 노력한 단지들도 다수였다. 그야말로 ‘으뜸’의 선순환이다.
뜨거운 충남과 얼어붙은 경기. 어쩌면 이리도 극명한 대비를 보일 수 있을까.
지금 경기도는 칼을 휘두르고 있고, 충청남도는 꽃을 심고 있다.
칼과 꽃의 결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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