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국립재난연구원은 지난 2014년, 빅데이터를 활용해 만들었다는 ‘2020년 한 달 간의 폭염지옥’ 시나리오를 내놨다. 여름철 한 달 동안 더위가 극심할 때 온열질환자와 사망자가 폭증하고 감염병 환자가 속출하며 전력소비량이 최대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런데 이 미래 재난 상황은 예상보다 4년이나 앞당긴 올해 ‘150년에 한 번 나타날 만한 폭염’이라는 거창한 위력으로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다. 서울의 경우 폭염 일수(낮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날)는 33일을 기록했고 열대야(하루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날)도 32일이나 지속됐다. 특히 8월 1일부터 25일까지 서울의 하루 평균 낮 최고 기온은 34.34도로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았고 전국 평균치도 33.3도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온열질환자 2,040명 가운데 17명이 사망했고 15년 만에 콜레라가 자체 발생한 데 이어 A형 간염, 레지오넬라증, 특히 콜레라, 진드기 질환 같은 후진국형 전염병은 물론 결핵, 말라리아까지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닭, 돼지 등 가축 411만 마리, 300만 마리가 넘는 양식장 물고기가 집단 폐사했으며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까지 감안하면 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 숫자에 이른다.
이에 “폭염도 국가적 재난으로 보고 정부 차원의 컨트롤 타워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 과거에는 불볕더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이 갈수록 잦아짐에 따라 정부는 2008년부터 ‘폭염 특보제’를 도입하면서 경로당과 노인정 등을 ‘폭염 대피소’로 지정하기 시작했다. 폭염이 ‘침묵의 살인자’라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이다.
날씨가 이렇게 요동치니 사람 사는 세상도 정상일 리가 만무했다. 100억원 수임료로 ‘수임료 여왕’에 오른 최유정 변호사를 비롯해 홍만표, 진경준, 우병우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비리 의혹은 ‘모두가 미친 사회’를 방불케 했다.
그 와중에 ‘입주민의 권익보호’라는 공익 실현을 위해 헌신하는 국가공인 전문관리 자격사를 향한 ‘종놈’ 발언은 무지와 야만으로 점철된 이 ‘미친 세상’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게다가 사실상 ‘징벌적’ 성격의 전기요금 누진제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으로 서민들을 울리면서 한전은 졸지에 ‘공공의 적’이 돼버렸다.
그런가 하면 날씨 오보가 잦았던 기상청도 한전 못지않게 곤욕을 치렀다. 1987년 태풍 ‘셀마’는 기상청의 오보에 거짓말까지 보태지면서 343명의 사망 및 실종자와 재산 피해액 3,913억이라는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그후 입만 열면 장비 낙후 타령을 하던 기상청은 1999년 슈퍼컴퓨터 1호기를 도입한 데 이어 2004년 2호기, 2010년 3호기, 지난해에는 600억원을 들여 4호기를 도입했다. 하지만 기상청은 올여름 장마철 비 예보, 폭염 종료 시점 등에 대해 잇달아 오보를 내면서 ‘기상 중계청’ ‘구라청’에 이어 ‘오보청’이라는 별명까지 보탰다. 오죽했으면 ‘오보죄(罪)에 희망고문죄(罪)까지 물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겠는가.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한 태풍·집중호우·폭설·가뭄 등의 자연재해가 갈수록 심화된다는 사실이다. 그 주된 원인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인데 인간은 아직도 자연을 이해·수용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맞섬, 극복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연재해란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연이 무심히 한 활동으로 인간이 피해를 보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을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즉 ‘자연은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라고 말했다. 자연이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는 뜻일 게다.
어쨌거나 그 지긋지긋하던 살인적 폭염도 8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서울 기준 최저 16도, 최고 18도를 찍으면서 꼬리를 내렸다. 이에 도종환 시인의 시 한편으로 9월을 연다.
이것도 어찌보면 살아남은 자의 특권이라면 특권이 아니겠는가.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벌써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 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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