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언니 토요일 12시에 출발해서 가까운 성지를 돌고 연꽃 보고 올까요?”
응락하기가 무섭게 한 대에 6명이 끼어 타고 길을 떠났는데 더워서 도무지 그늘이 없는 노지에 내려설 자신이 없어진다. 순식간에 목적지가 산정호수로 바뀌고 차 안에서는 꾸려온 주머니를 덜어내기 시작한다. 한 차에 탄 사람들은 저마다 개성이 달라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다니는 것처럼 몫이 다르다. 
차에서 내리니 후텁지근하고 이내 땀으로 등이 젖는다. 산정호수의 둘레길을 걷기 위해 일단 오르막길로 들어서야 한다. 숨이 턱턱 막히는데 4살배기 꼬마가 우리를 앞지르니 입 다물고 걸어야 할 판이다.
솔 숲길을 걷다가보니 어느새 호수가 보이고 호수 위로 데크길이 놓여 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신선놀음을 했다. 물가의 서늘함에 땀이 식는다.   이때 우리 옆으로 물을 가르며 쌩쌩 달리는 모터보트가 충동질을 한다.
유혹에 진 우리는 선착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 배에 5명 정원이라고 하니 멤버들이 저마다 자기는 안 타도 된다고 꽁무니를 뺀다. 왜 그리 착한 사람들이 많을까. 하지만 그것은 안될 일, 입장권을 사러 갔다.
“인원은  6명인데 정원은 5명이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그냥 두 배에 나눠 타시고 만원만 더 주세요.”
나이가 들고 지나치게 계산적이면 포기할 것 같은지 무지무지하게 합리적인 대안을 내려줬다. 많이 태워달라는 주문을 보트 기사에게 말하라는 답을 얻고 물러서는데, 창 안으로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인다. 얼른 셋씩 보트에 올랐다. 타자마자 나는 커피 노래를 불렀다.
“기사님, 우리 보트에는 사람만 탄 게 아니라 커피도 탔거든요. 많이 돌아주세요~옹”
한참 내달리더니 보트는 후미진 곳으로 가서 멈춘다. 커피가 몇 병이나 있느냐고 묻길래 통째 보여줬더니 컵이 있느냐고 또 묻는다. 따라서 마실려고 그러는 줄 알고 빈 병을 내밀었더니 아예 그 병의 커피를 비에 떠내려온 쓰레기를 치우는 청년들에게 내미는 거였다. 감동이 물살처럼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 커피를 주었다고 기사님 것이 없느냐 하면 또 있지요.”
이리하여 우리는 기사님의 기분좋은 배려로 신나게 세 바퀴나 돌았다.
윈윈은 좋은 것, 그들에게 손님이 늘어나라고 우리는 신나게 소리를 질렀고 음향효과를 노리는 기사님은 데크길 가까이 가서 보트를 한번 트위스트시켰다. “끼야악~~~~~” 지나가던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주어 우리도 덩달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른 한 보트는 이미 시야에서 벗어나 있고 우리 보트만 산정호수를 독차지하고 있다.
서서히 속도가 줄고 우리는 내릴 준비를 하며 가방의 커피병을 꺼내 한번  흔들어 주었다. 일하는 청년들을 생각하고 손내미는 사람을 만난 것이 보트를 탄 것보다 더 행복감을 높여줬다.
만사에 따지는 것은 이 더위에 짜증나는 일이다. 우리는 놀러와서 재미있어야 하고 그들은 덥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니 기분을 거스르는 일은 서로에게 독이다.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면 내게는 자동적으로 원하는 것이 다가온다. 안 와도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순서이다. 가슴으로 다가가서 안풀리는 일은 거의 없다. 만나서 기분좋은 사람들과 봉지봉지 싸들고 와서 나누어 먹는 즐거움은 빠질 수 없는 행복이다.
구성진 입담을 가진 여인의 입이 열릴 때마다 개망초꽃 송이보다 보다 더 많은 웃음꽃이 핀다. 나이대장이 내는 공짜 밥은 별미이고 가만히 있어도 사진이 찰깍찰깍 찍히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원피스 입고 간 나를 공주로 보아준 여인은 눈이 예뻐서 엄지 세워주고 우리 모두의 발이 돼준 사람에게는 무한 감사이다. 사람이 모이면 어느새 제 각각의 역할이 있더라는 것, 그것도 묘하다.
나는 이렇게 가슴에 길이 나 있는 사람하고 다니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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