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일기 84

 


입대의 최 병 용 회장
경기 청평 삼성쉐르빌

박태원의 소설 <천변 풍경>에는 시골뜨기 소년 창수가 등장한다. 1930년대 서울에 올라온 창수가 한약방 머슴으로 성장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는데, 창수의 고향은 가평이다. 그 당시의 가평에서 서울 가기는 그야말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야 하는 긴 여정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평이 고향인 창수를 시골뜨기로 표현했으니 당시 사람들 마음속에 가평은 얼마나 시골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지금도 서울까지 가는 길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철도 있고, 그보다 더 빠른 경춘선 열차도 있고, 또 자가용을 이용하면 그렇게 먼 길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문명의 혜택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문명의 편리함을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닌가 보다. 얼마 전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인도네시아 파푸아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 코로와이 부족의 삶이 소개됐다. 벌레나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집이 높은데 있을수록 부와 명예가 높다고 생각해서 40미터 높이의 나무 위에 집을 짓고, 그 높은 곳에 화덕을 만들어 음식을 해먹으며 사는 문명과는 동떨어진 그야말로 원시의 삶을 사는 부족이었다.
1시간만 정전이 돼도, 반나절만 단수가 돼도, 하루만 가스 공급이 중단돼도 불편함을 느끼고 ‘멘붕’ 단계까지 가는 문명인인 우리로서는 코로와이 부족의 삶은 멀고 먼 딴 세상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이 손에서 잠시라도 떨어지면 공황상태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고 걸어 다니며 전화를 하고 인터넷을 한다는 사실을 코로와이 부족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마을 청평 조종천 주변에는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코로와이 부족 같이 원시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모여드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주말엔 이들이 더더욱 기승을 부리며 좀비같이 떼로 몰려든다. 주말을 보낸 다음 조종천 주변에 나가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돌멩이를 쪼개서 농기구를 만들던 석기 시대로 돌아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돌멩이 대여섯 개 정도로 만든 화덕 주변에는 원시인들이 남긴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검게 그을린 돌멩이 화덕에는 그들이 남긴 웃음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치워야 할 쓰레기와 잿더미만 가득 남아 있다.
들에 피어나는 수많은 들꽃은 들에 있어야 들꽃이 된다. 쉼 없이 흐르는 조종천의 물줄기 또한 그곳에서 흘러야 하고, 물고기들의 쉼터와 먹이 사냥은 돌멩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화덕으로 사용한 검게 그을린 돌멩이들이 마치 총성에 맞아 흩어진 포화 속의 군인들 마냥 물속이 아닌 천변에 흩어져 있다. 어차피 오염된 돌을 다시 물속으로 돌려준다 한들 물고기의 쉼터가 되는 기능은 상실한지 오래됐지만….
원시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코로와이 부족들은 물질문명을 모르고 살아가지만 적어도 자연을 훼손하며 살지는 않는다. 딱 필요한 만큼만 자연을 이용하고 있다. 문명인인 우리도 더 이상 자연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가족끼리의 단란한 휴식을 위한 만찬에 석기시대가 아닌데 굳이 장작과 돌멩이 화덕을 사용해 흔적을 남겨야 하는지 묻고 싶다.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더 좋은 문명의 이기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또한 그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주려는지 묻고 싶다.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따라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머물다 간 자리를 보면 문명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하얀 새 한 쌍이 넓은 날개를 펼친 채 조종천 위를 유유히 날고 있다. 점심 식사 후의 산책인 듯. 그리고 물 아래에는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치어들이 개구쟁이들처럼 떼 지어 헤엄쳐 다니고 있다. 아름답다, 이 곳 청평이. 한낮의 쏟아지는 햇볕을 쬔 돌멩이가 하얗게 빛난다. 이 자연 이대로 훼손시키지 않고 우리의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고향, 청평과 조종천을 물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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