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지리산은 그 넓은 품만큼이나 중생구제를 위한 화엄의 사찰을 많이도 품고 있다. 수행을 통해 만덕(萬德)을 쌓고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하는 일이 화엄이라 했던가.
처염상정(處染常淨)의 대명사 연꽃이, 연등으로 해마다 지극정성 불을 밝히니 번뇌와 무지가 사라지고 반야지혜가 켜켜이 쌓여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중산리 주차장에서 경남환경교육원까지 3.2㎞를 2,000원을 내고 두류교통의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쉬운 코스도 있건만 나는 셔틀버스를 외면하고 칼바위가 있고 망바위가 있는 험한 길을 택해 올라간다.
오늘은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 셔틀버스도 바쁘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좋다. 아주 천천히 걸어보지만 이 길은 가파른 곳도 많고 계단도 참으로 많다.
계단을 오르며 숨이 차면은 저만치 나훈아의 잊지 못할 ‘붉은 입술’처럼 입술을 내미는 철쭉을 바라본다.
지금 바래봉에는 철쭉 축제를 하고 있다지.
나팔꽃처럼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출발한 등반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등나무의 진보라 꽃잎으로 축 쳐져 보폭을 아무리 좁게 해도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기가 힘이 든다.
사방은 신록으로 뒤덮이고 보이는 것은 하늘뿐인 지대를 힘들게 올라 드디어 법계사에 당도하니 여기부터가 속계를 벗어난 법계인가 보다.
아래의 산등성이를 굽어본다. 이런 맛으로 산을 오르나 보다.
단테도 이 세상을 굽어보는 것을 즐기기 위해 산을 자주 올랐다고 하질 않았던가.
법계사 적멸보궁 법당에 앉아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속계를 헹구어 내고 법계를 가슴에 앉히나 보다.
해발 1,450m에 자리한 법계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는 절이란다.
설악산 봉정암이 그렇게 높아도 1,224m가 아닌가.
부처님 진신 사리탑이라는 3층 석탑이 커다란 바위 위에서 한 몸이 되어 속세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연등 하나 달고 법계사의 범종(梵鐘)을 힘차게 한 번 쳐본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범종이 아닌가.
범종각 기둥에는 한 번씩 쳐도 좋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지리산을 흔드는 그 울림의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건강한 목소리의 은은한 바리톤이다.
3만여 명의 불자가 정성을 모아 만들었다는 범종, 무게가 무려 4,050㎏이며 헬리콥터가 힘들게 운반을 해 설치했다는 범종.
발원문에 새긴 글귀처럼, 법계에 울린 이 종소리가 사바세계를 구원하는 반야의 지혜로 드러나고, 천왕의 위신력과 제석천왕의 정법수호로 대한민국 국운이 융성하고 모두의 가정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본다.
불상은 없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은 부처님을 직접 친견하는 것과 같아 의미가 더 깊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적멸보궁은 바깥 경계에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런 궁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적멸보궁을 가진 사찰이 많다.
통도사, 봉정암, 상원사, 법흥사, 정암사, 건봉사, 도리사, 용연사, 비슬산에 있는 대견사도 국보급 적멸보궁이란다.
관음성지도 많고 지장도량도 많은데, 5대 관음성지니 10대 지장도량이니 하는 그 크고 작은 구분과 경계가, 관음보살을 욕되게 하고 지장보살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수많은 종파와 수많은 부처가 어느 자리에 있어도 결국은 하나인 것을.
법계사에 수많은 연등을 보면서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지리산보다 더 크게 비추기를 바라본다.
중생을 향해, 중생을 향해….
<끝>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