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천일각
천일각이라는 이름은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애일각(天涯一閣)을 줄인 것이다. 다산이 유배시절에는 없던 건물인데 돌아가신 정조대왕과 흑산도에 유배 중인 형님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이 언덕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스산한 마음을 달랬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1975년 강진군에서 새로 세웠다. 동암(東庵)에서 천일각에 이르기 전 왼편으로 나 있는 길은 백련사로 가는 길이다. 유배생활 동안 벗이자 스승이요, 제자였던 혜장선사와 다산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800m 길에는 야생차군락과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동백숲을 만날 수 있다.

◈연지 석가산(蓮池 石假山)
연못 가운데 돌을 쌓아 만든 산이다. 다산은 원래 있던 연못을 크게 넓히고 바닷가의 돌을 주워 조그마한 봉을 쌓아 석가산이라 했다. 잉어도 키웠는데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후 제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잉어의 안부를 물을 만큼 귀히 여겼다. 다산은 잉어를 보고 날씨를 알아냈다고 한다.

◈약천(藥泉)
가을에도 잘 마르지 않는 이 샘은 다산초당의 제2경이다. 처음에는 물이 촉촉이 젖어있던 곳을 다산이 직접 파니 돌 틈에서 맑은 물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다산은 약천의 물을 마시면 담을 삭이고 묵은 병을 낫게 한다고 기록했다.

◈정석(丁石)
다산이 직접 새겼다고 하는 정석은 다산초당의 제1경이다. 아무런 수식도 없이 자신의 성인 정(丁) 자만 따서 새겨 넣은 것으로 다산의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산초당과 서암(西庵)
초당은 다산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썼던 곳이다. 원래는 윤단의 산정이었으나 서로 교분을 나누면서 그에게 거처로 제공됐다. 1957년 다산유적보존회가 허물어진 초가를 치우고 다시 지으면서 기와로 복원했다. 조그마한 짚을 덮은 본래의 초당으로 복원할 예정이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다. 서암은 윤종기 등 18인의 제자가 기거하던 곳이다. 차와 벗하며 밤늦도록 학문을 탐구한다는 뜻으로 다성각(茶星閣)이라고도 하며 1808년에 지어져 잡초 속에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1975년 강진군에서 다시 세웠다.

◈오솔길
다산초당에는 다산의 정취가 묻어 있는 3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입구에서 초당에 이르는 ‘뿌리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동암을 지나 왼쪽으로 나 있는 ‘백련사 가는 길’이다. 윤종진의 묘 앞에 나 있는 이 오솔길 역시 다산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마을을 오가며 다녔던 길이다.

뿌리의 길/ 정호승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뿌리의 눈물을 훔쳐 준다는 것을/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가서 다시 잎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다산이 초당에 홀로앉아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어린 아들과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나는 눈물을 닦고 지상의 뿌리가 되어 눕는다/ 산을 움켜쥐고 지상의 뿌리가 가야할/ 길이 되어 눕는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