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문화는 시대의 흐름이고 바람이다. 어디서부터 흘러들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흐름이 보이기도 하고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불어가는지 모르게 한 시대를 지배하기도 한다. 그 흐름을 타지 않고 산다는 것은 현실에서 변화에 쉽게 동화하지 않고 부동의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더디 변할 뿐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어찌됐건 자기 고집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흐름을 타는 부류와는 공유하는 정도가 낮다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문화의 특성을 낱낱이 맛보고 지나갈 수는 없겠지만 변화의 속도를 따라 가지 못해서 문화의 외진 자리에 머무는 부류도 있다.  
최근 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고루 다양하게 보려고 노력했다. 재미라기보다 흐름에 대한 점검차원이다.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변화를 추구하고 무엇이 그들을 충족시켜주는 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좋거나 그르거나 그 시대를 반영하는 코드가 있는데 내가 세상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아보는 중이다. 시청률이 현실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최근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 한 편이 바람을 일으키더니 낯선 단어들이 그 바람에 떨어진 낙엽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처음에는 무엇을 일컫는지를 알 수 없었으나 이내 눈치로 소통했다. 그러나 그 드라마가 여러번 재방송되는 바람에 드라마의 흐름을 알게 됐고 어떤 문화적 바다에 풍덩 빠져봤다.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 속으로의 여행 같았다. 정서적으로 자극이 오는 대로 이곳저곳에 글을 써보면서 생각했다. 결국 그 드라마에는 부정적 시각보다는 긍정적이고 시대의 아픔이 걸러져 승화돼  현 시점에서 추억곱씹기가 됐던 거였다.
그 드라마를 중심으로 대화하는 사이에 응팔이가 누구냐고 묻는 사람을 만났다. 마치 라면이 어떻게 생긴 음식이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생소한 질문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젊은 날 혜은이가 누구냐고 물은 것과 흡사하다. 공유하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다.
내가 공유하지 못한 현대 속의 문화는 바로 오프라인상의 카페활동이다. 나는 카페에서 글로 활동을 해봤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일은 경계해왔다. 진솔한 글로 세상 사람들에게 순도높게 소통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알거나 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며칠 동안 제주도 여행에 참여해봤다.
내가 알지 못한 세상이 거기에 있었다. 우수카페로 인정받은 그곳의 연중행사라고는 하지만 평균 연령 60세 이상인 80여 명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제주로 행했다면 상당한 규모다. 여행 다니기에 사회적 여건은 충분하지만 막상 나이가 들다보면 며칠 여행을 떠날 때 머뭇거려지는 게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카페는 외로운 이들과 글판에서 대화의 장을 열기도 하고 오프라인에서 같이 걷고 산행을 하면서 연중행사로 원거리 여행을 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사건사고만 많은 게 아니라 도처에 재주꾼도 많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풍부한 사람도 많다. 3박 4일 동안 하루는 제주도 회원들과의 만남이 아름다웠고 그들과 함께 치른 단체 칠순잔치는 무엇보다 빛났다. 풍부하게 제공된 회원들의 후원물품과 후원금으로 마련된 잔칫상은 구수하다. 여기저기 풍선도 장식하고 저마다 분장을 하고 잔치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준비를 했는데 모든 국민이 예능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품바를 연기한 재주꾼과 사회를 보는 재능인, 그 행사를 준비하는 헌신적인 여인들, 망가지면서 웃음을 생산하고, 마음을 돌보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같은 방 룸메이트들과 잠시 나눈 정도 깔끔하고 배려심 높은 방장의 마음씀도 깊이 남는다. 나는 참여한 여성들의 건강한 일상 탈출에 박수를 쳤다. 그중 9시간 동안 눈 쌓인 한라산 등산을 마치고 돌아온 50대 여성 4명은 한없이 부러웠다.
나는 양손 검지 손가락을 스틱 삼아 터벅터벅 하얀 화면을 눈길 삼아 글을 쓰는데 그녀들이 만난 한라산의 정상에 선 기분과 비길 수가 있을까. 그래도 훗날 누군가가 부럽지 않으려면 머리가 돌아가고, 가슴이 뛰고, 손이 건강할 때 글 쓰는 일에 게으르지 않으며 흐름을 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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