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탄 구들장으로 난방 문제를 해결하던 아파트가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4베이 설계, 3면 발코니, 층간소음 저감 등은 이제 더 이상 새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공간과 첨단 기술을 무수히 쏟아낸다.
최근 신축 아파트의 트렌드 역시 자투리 면적을 합쳐 만든 알파룸, 자녀 교육을 돕는 공간설계, 범죄로부터 보호를 받는 보안과 안전, 지능형 홈네트워크 시스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힐링과 휴식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쪽으로 가고 있다. 또한 주거의 편리함과 쾌적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도심 속 공원’ 같은 아파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 테마정원과 숲 속 산책길은 물론 소규모 캠핑장과 가족형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작은 농장까지 갖춘 곳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제법 규모가 큰 아파트 단지에서는 별도의 행정신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 카페 운영이 성업 중인 곳도 있다. 어디 그 뿐이랴. 힐링과 휴식을 넘어 레저까지도 즐길 수 있는 원스톱 생활이 가능한,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 작은 도시’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순수 주거용뿐만 아니라 주상복합 건축물도 끝없는 변신과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기존 주상복합단지 외관의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맞통풍이 잘 되는 판상형 설계와 중소형 위주의 평면 설계로 몸값을 낮추면서 실용성은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이렇게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외형상 새로운 주거양식과 다양한 주거형태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썩 좋지 않다. 가파르게 증가해온 가계 빚이 어느새 1,200조원을 넘어섰고 전세값 상승, 월세가구 증가, 게다가 양극화, 고령화, 저출산 등의 사회문제 외에도 이혼, 사별 등의 개인 사정까지 겹치면서 ‘나홀로족’으로 불리는 1인 가구 증가는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입주민의 권익보호’라는 공익·공동선을 추구하는 주택관리사 등의 길은 갈수록 멀고도 험난하게만 느껴진다.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요, 주어진 업무량은 끝이 없는데 책임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정책 탓, 제도 탓, 세상 탓, 남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도 지나치면 병이 되기 십상이다. 그럴수록 국가공인 전문관리 자격사라는 자긍심과 주체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요즘 보면 대다수 전문 자격사들이 초창기의 선구자적 개척정신이나 지사(志士)적 투사정신 없이 그저 단순한 ‘생계형 소장’으로 전락해 가는 것만 같아 걱정된다. 사실 (보) 3년이면 (사)를 따게 되는 현실에서 스펜서가 주창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명제는 그야말로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여, 처음 단지에 부임하는  소장들에게 “눈 감고 1년, 귀 막고 1년, 입 닫고 1년으로 무조건 버텨내라”고 신신당부해야 했던 것이다. 현장 경력이 절대적, 최우선적 가치여서 현장 적응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현실에 잘 적응하는 자’가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자’가 살아남는 시대다. 이 말인즉슨 ‘새로운 생태 시스템과 트렌드를 창조해 나가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라는 뜻이다. 따라서 국가의 명을 받아 공법에 의거 공공이 정한 규정에 따라 공익·공공의 업무를 집행하는 전문 자격사들은 일상적인 행정이나 기술업무 외에도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지원금, 보조금 제도를 십분 활용하고 단지 내 기초생활 수급자·기초노령연금을 비롯해 입주민의 취업알선이나 장애인 지원 등 사회복지에 대한 선진 행정서비스까지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가공인 전문관리 자격사 스스로 전문성과 소명의식 그리고 투철한 윤리의식으로 스스로의 권위를 높여가며 경비원 등 관리요원들의 처우 개선에도 적극 나서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비록 현실이 고되고 모질고 팍팍하더라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전문직업인으로써 소신껏 능력을 펼쳐 보이며 그에 합당한 예우를 받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이에 다시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구를 떠올려 본다. “최고의 날은 미래에 있다!(The best is yet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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