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이 성 영  여행객원기자
laddersy@hanmail.net

 

자유가 무엇인지.
내안의 영혼이
얼마나 순수한지를.
어둠이 만들어주는
마술들이
그 밤에 펼쳐진다.
사색과 관념조차
무뎌지는
신기루 같은
태초의 섬에
들어서다.

 

모래톱에 부드럽게 배가 닿는다. 사다리를 해변에 걸쳐 일행들을 내려놓고 낚시 배는 내일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금방 사라진다. 내리쬐는 강한 햇빛에 반짝이는 모래 언덕이 바로 눈 앞에 있다. 발에 닿는 잘박한 감촉들. 바닷물이 금방 빠진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규사질의 모래다. 40년 전에 사유지로 됐지만 섬은 개발의 흔적이 별로 없다. 얼마 전까지 해외 및 국내인들의 전지훈련장으로만 간간이 이용되던 섬이 세월호사건 후 한산해지자 일반인에게 공개가 됐다.


사승봉도는 모래의 사구가 발달해 사도(沙島)라고도 부르는 인천시 자월면 승봉리에 속한 무인도다.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이나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 자월도, 승봉도행 배를 타고 들어와 승봉도 선착장에서 다시 부정기적인 낚시 배를 타고 10분 정도 들어가는 섬의 오지다. 
사승봉도는 육지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사구가 발달해 사막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물에 잠기고 나타나는 모래 땅의 면적만도 33만㎡다. 개흙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규사 질 모래다. 규사는 유리의 원료다. 이곳에서는 물이 들며 나며, 잠겼다 다시 나타나는 고래등 같은 모래섬을 펼쳐내는 대이작도의 풀등(풀치)이 아련히 보이기도 한다.
길게 도열한 대이작도와 소이작도를 마주보고 있는 섬의 해안은 넓은 강줄기 같은 해협의 잔잔한 바다와 아주 낮게 수평을 이루고 있다. 섬과 섬들은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다. 대이작도 풀등의 모래톱을 조심스럽게 흐르는 바다는 광활한 대지에 강물이 흐르는 것을 연상시킨다.


소이작도로 넘어가는 일몰 속에 마치 석양에 붉게 타오르는 강처럼 보인다. 섬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환영이다. 7년 전부터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 관리인은 이 섬의 매력을 이렇게 말한다.
“여름에 와 보세요. 7월 말부터 8월 초 열흘 정도는 반딧불이가 섬을 수놓고 있어요. 늦가을에는 수크령과 쑥부쟁이 등 야생화도 만발하구요. 매월 음력 그믐날(말일)이면 별이 쏟아져요. 은하수까지 흐르는 걸요”
도룡뇽이 이슬을 먹으며 서식한다 하니 과연 무인도 다운 청정지역이다.
밤에 달이 떴다. 모래톱을 한 겹씩 넘으며 달려오는 파도소리가 꿈길처럼 아른하다. 텃새가 돼 버린 검은머리물떼새의 울음소리만 없었다면 달빛에 비췬 플랑크톤이 만든 형광색 파도에 홀려 먼 바다로 하염없이 걸었을 것이다.
검은머리물떼새는 겨울철새이지만 우리나라 무인도 몇 곳에 텃새처럼 정착해 살아가기도 하는 보호종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산란철을 맞아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이 밤에도 울었을 것이다. 관념도, 사색도 이곳에서는 번뇌일 뿐.
무인도의 밤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의 영혼을 이리도 다독이는지, 밤 풍경이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희열은 내 안을 순결하게 파고든다.
파도소리 들으며 드넓은 바다. 사막을 걷는다. 맨발로 걸으면 모래의 감촉이 피부 깊숙한 말초혈관까지 부드럽게 자극하며 비로소 무인도의 자유인이 된다.
여명이 떠오르는 아침. 통보리사초의 푸른 초지와 드넓은 모래가 바다와 어우러진 섬. 그 섬에는 태초의 풍경들이 있다.

 

◈야영과 승봉도 트레킹
밤이 만들어 놓은 사승봉도의 풍경이 있다면 본섬인 승봉도는 낮에 느끼는 경쾌한 여행을 맛볼 수 있다. 승봉도는 서해 갯벌의 바다와는 달리 바닷속까지 들여다보이는 옥빛 같은 맑은 수질로 인해 텀벙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다. 트레킹을 한다 해도 넉넉잡아 서너 시간 걸으면 승봉도의 비경을 만끽할 수 있다. 이국적인 목섬의 비취빛 해안.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촛대바위. 오랜 시간 파도가 만들어 놓은 남대문 바위 등 해안 암석지대의 감동은 서해 작은 섬을 다시 생각하고 느끼게 해준다.
10년 전에 서울 봉천동에서 교직생활을 접고 이곳에 들어와 ‘바다로 가는 길목’이라는 펜션을 운영하며 노후를 보내는 김영후(76)씨에게 승봉도의 좋았던 느낌을 물었더니 “개인적으로 승봉도의 자랑은 겨울에 소나무 가지에 피는 눈꽃이 장관이에요.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요”라고 선뜻 말한다.
그만큼 사시사철 볼거리를 제공하는 섬이다. 승봉도는 다른 섬들에 비해 활기차다. 펜션 등 민박시설도 많고 이일레해변과 같은 큰 해수욕장도 있어 가족 단위의 여행지로도 좋다.
낚시, 조개 채취, 해산물 시식 등 테마여행 프로그램도 여러 펜션에서 직접 운영한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한산한 서해의 섬들은 휴식의 시간들을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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