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어머니의 주름진 손마디가 한데 묶여 도착한 소포가 얼마나 골목길을 바삐 돌아왔기에 해풍도 마르지 않고 서울까지 왔을까. 고두현의 ‘늦게 온 소포’는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처럼 사실 너무 빨리 온 역설이다. 골목길은 어머니의 사랑가다.
골목길! 섞여 있어도 각자요, 각자이면서 하나인 골목길. 각자의 향기이면서 각자의 삶이면서 각자의 눈물이면서 하나가 되는 골목길.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시간과 공간이 뒤섞여 역사의 굽이를 만들고, 바람이 불어도 세상을 향해 달리고, 눈, 비가 와도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곳. 고만고만한 자세로 욕심내지 않고 살아가는 골목길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을 알고 있을까.
지혜의 본질이 상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란 것을 골목길은 또 알고 있을까.
“잡고 있는 것이 많으면 손이 아프고 들고 있는 것이 많으면 팔이 아프고 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목이 아프고 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어깨가 아프고 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눈이 아프고 생각하는 것이 많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여기까지 참 잘 왔구나. 나 자신에게 칭찬 한마디를 하라”는 글이 완월동 골목길을 돌아 학룡사 절 입구의 오른쪽 비석에 쓰여 있었지.
그래, 손이 비어 있어야 잡아 줄 손이 되고, 어깨가 비어 있어야 기대어 줄 수 있는 어깨가 되고, 가슴이 비어 있어야 보듬어 줄 수 있는 가슴이 된다.
순천의 비례골길에 있는 드라마 촬영장에는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빛과 그림자’가 골목길을 따라 가파르게 흐르고 ‘주부가 행복할 때 최신 빈혈 치료제 헤로빈’은 1960년대의 광고였으리라. 1만2,000평 부지에 200여 채의 달동네 사이로 난 골목길은 화엄의 골짜기에 핀 삶의 하이라이트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의 길이가 1004m라 해 여수 고소 천사 벽화마을은 하늘과 산과 바다가 함께 뒹군다.
산동네요, 달동네가 골목길이 있어 담벼락에 여수 8경이 있고, 김소월의 진달래가 전라도 버전으로 담벼락을 기어오른다. 돌산대교, 거북선대교는 천사 벽화마을의 골목길에서 보아야 정말로 아름답다.
골목길의 향기를 천리향이니, 만리향이니 숫자에다 비유를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리라. 흰 구름 뿌리가 없고 푸른바람 뿌리가 없어 신라와 백제가 향기로 흐르고, 고려와 조선이 향기로 퍼지는 저 수많은 골목 골목길을 보라.
지금 보슬비가 내리고 어머니가 계시는 산소에 들렀다가 나는 칠원의 무기연당 풍욕루(風浴樓)에서 바람 목욕을 하고 있다. 무기연당은 주재성의 생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아름다운 연못이다.
어머니의 산소가 칠원의 공동묘지에 있고, 칠원의 시장 안쪽에 있는 칠원 초등학교는 내가 다닌 학교다. 조상을 숭배하고 근본에 보답하자는 숭조보본(崇祖報本)을 종훈(宗訓)으로 하고 있는 나는 칠원 윤씨다. 올해부터 면에서 읍으로 승격된 칠원 장터의 골목길을 돌아 풍욕루에서 먼데서 불어오는 조선의 바람으로 목욕을 하고 있다.
골목길은 역사요, 인생이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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