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이 채 영  여행객원기자
여행비밀노트(http://chaey.me)

 

버스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멋있다’,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동화 속 마을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세상에 가장 고운 색만 모아 이곳에 숨겨놓은 듯. ‘체코의 오솔길’이라는 뜻의 체스키크룸로프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체스키크룸로프는 제법 운치 있다. 고딕, 르네상스, 아르누보 등 시대별로 유행했던 양식의 건물들로 둘러싸여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걷다보면 어느 모퉁이에선가 말을 탄 중세 기사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다.

스보르노스티광장 Svornosti Square

프라하에서 출발한 스튜던트 에이전시 버스는 약 2시간 반을 달려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한다. 작은 표지판 하나가 전부인 터미널에 내려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다 보면 체스키크룸로프의 상징이자 역사인 스보르노스티광장Svornosti Square이 나온다.
이곳은 마을의 유일한 광장이다. 두 건물을 포개 다시 지은 시청사, 알록달록한 르네상스 건축물 사이에서 유일한 고딕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더 올드 인(The Old Inn) 등 10여 채의 건물이 사각형으로 광장을 둘러싸며 오밀조밀 모여 있다.
광장 한 가운데는 성 삼위일체 탑이 우뚝 솟아 있다. 흑사병 창궐이 멈춘 것을 기념하기 위해 1715년에 세운 것이다. 각각의 건물에는 독수리와 꽃잎을 새긴 로젠베르그Rosenberg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세월이 흘러 영주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 권세만큼은 지금껏 이어지는 듯하다.

체스키크룸로프 성 Cesky Krumlov castle

체스키크룸로프 성은 마을의 중심이다. 13세기 크룸로프 영주가 돌산 위에 성을 짓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 성 외벽의 채색은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한 스라피토(Sgraffito) 기법으로 멀리서 보면 꼭 벽돌을 쌓아 지은 것처럼 보인다. 체스키크룸로프 성 타워는 체스키크룸로프에서 꼭 가봐야 할 스폿 중 단연 첫 번째다.
160개가 넘는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올라 타워의 꼭대기에 도착하면 왜 체스키크룸로프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불리는지 알게 될 것. 잔잔하고 아름다운 블타바 강이 마을을 휘감아 돌고 그 주변으로 알록달록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동화 속 한 장면이다.

이발사의 다리 Lazebnicky Most

스보르노스티광장이 있는 신시가지에서 체스키크룸로프 성이 있는 구시가지로 가기 위해서는 ‘이발사의 다리(Kazebnicky Most)’를 건너야만 한다. 이곳에는 합스부르크 왕가 루돌프 2세의 아들과 가난한 이발사의 딸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정신병을 앓던 루돌프 2세의 아들이 아내인 이발사의 딸을 살해했고, 루돌프 2세는 이 사실을 알고도 며느리를 죽인 범인을 찾겠다며 범인이 나올 때까지 백성을 한명씩 죽였다. 희생이 점점 커지자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이발사가 거짓 자백을 해 대신 죽음을 맞았고, 이후 마을 주민들이 이발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 지금의 이발사의 다리라는 것이다. 전설을 듣고 나니 다리 한가운데 세워진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과 성 요한 네포무츠키 동상이 괜스레 애처롭게 느껴진다.

에겐베르그 레스토랑 Restaurace Eggenberg

“나 즈드라비Na zdravi!” 체코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유쾌한 외침은 ‘건강을 위하여!’라는 뜻의 체코어 건배사다.
체코는 세계에서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맥주를 물처럼 마시는 나라인 만큼 전국적으로 수백 개의 양조장이 있고 오리지널 상표를 단 맥주만 해도 300종이 넘는다.
작은 마을인 체스키크룸로프에도 꽤 괜찮은 맥주 양조장이 있다. 500년 전통의 에겐베르그 양조장이다. 양조장은 레스토랑도 겸하고 있다. 이곳에서 꼭 맛봐야 할 것은 정제하지 않은 효모 맥주와 훈연 흑맥주로 독특한 향과 어우러지는 신맛이 인상적이다. 오전 11시에는 양조장투어도 진행하니 시간이 맞으면 한번쯤 참여해도 좋을 것.

여행정보
#비자 : 관광 목적일 경우 입국 비자를 발급받지 않고 90일간 체류할 수 있으며 입국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스튜던트 에이전시 : 체스키크룸로프를 둘러보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은 장거리 버스인 스튜던트 에이전시Student Agency. 홈페이지(bustickets. studentagency.eu)에서 미리 예약하고 E티켓을 출력하면 된다.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요금은 왕복 14.6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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