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골목길은 역사요, 인생이요, 사랑이다.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함께 한다는 것이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 했던가. 찬란하게 눈부신 무루지(無漏智)의 광명을 숨기고, 세속의 번뇌 오탁을 끌어안고 뒹구는 골목길은 화광동진이다.
꾸민다고 모두가 빛나고 아름답다면 진광불휘(眞光不輝)라는 말이 골목길에서 서운해 할지도 모른다.
어울려서 아름답고 함께해서 행복하고, 하늘과 바람과 세상을 공유하며 바둑고수들의 절묘한 행마처럼 묘수로 이어지는 골목길.
길이란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일컫는다고 한다. 절경이 많아 올레라는 감탄사가 붙는 올레길, 주로 산의 둘레를 따라 도보로 일주하는 둘레길, 이야기가 있는 테마길, 솔바람이 갈라 놓은 작은 갈래길, 천년의 이끼가 사랑을 속삭이는 벼랑길, 속살이 부끄러워 햇볕도 거부하는 숲속길, 역사도 함께 흐르는 강변길, 하늘과 바람과 함께 걷는 바닷길, 민중의 땀이 베인 논두렁길, 호젓하면서도 폭이 좁아 더욱 다정한 오솔길,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소리가 좋은 소리길, 추억이 아른거리는 철둑길.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아도 가까이 가면 보이는 흙길과 자갈길도 있다.  힘들고 지쳐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는 고갯길도 있다. 지름길, 샛길,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길, 생략할 수 없는 징검다리길, 고소공포증이 있어도 건너야 하는 출렁다리길도 있다.
살아가면서 가야 할 인생길도 많다. 없는 말이 없는 말의 길도, 없는 글자가 없는 글의 길도 참으로 많다. 물길과 불길이 길을 잘못 가면 재앙이 되듯이 우리들의 손길과 발길과 눈길이 잘못 가면 낭패를 당하는 수도 있다. 여행자에게는 안내도가 되고, 힘든 순례자에게는 지팡이가 되고, 길 잃은 자에게는 나침반이 되는 길. 오늘도 걷고 있는 우리들의 길이 출발지와 도착지를 클릭하면 안내하는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만은 아니다. 
어쨌거나 많고 많은 길 중에 나는 오늘 내가 좋아하는 골목길을 간다. 골목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큰길에서 쑥 들어가 동네나 마을 사이로 이리저리 나 있는 좁은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골목길은 사랑의 길인가 보다.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현식의 골목길은 그가 떠난 지 25년이 지나도 우리들 가슴에 쿵쿵거린다. 그가 부른 ‘사랑 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내 사랑 내 곁에’가 어쩌면 모두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그 어디쯤의 골목길이 아니었을까.
김현식의 골목길이다.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수줍은 너의 얼굴이 창을 열고 볼 것만 같아/ 마음을 조이면서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만나면 아무 말 못하고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 태우네/ 바보처럼 한마디 못하고서 뒤돌아 가면서 후회를 하네

이재민의 깜깜한 골목길도 사랑이다.

오늘밤은 너무 깜깜해 별도 달도 모두 숨어 버렸어. 네가 오는 길목에 나 혼자 서있네/혼자 있는 이 길이 난 정말 싫어/ 찬바람이 불어서 난 더욱 싫어/기다림에 지쳐 눈물이 핑 도네/ 이제 올 시간이 된 것도 같은데/네 모습이 보일 것도 같은데/ 혼자 있는 이 길은 아직도 쓸쓸해/골목길에서 널 기다리네/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골목길

우산을 쓰고 좁다란 골목길을 걸어가던 아련한 추억의 동요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강우산 파랑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골목길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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