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리사무소장이다 (41)

 

 

유 벽 희 주택관리사

관리비 같은 내용을 갖고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식이 완전히 다르게 되는 경우 흔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한다.
사람은 대체로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 경향이 크므로 이런 아전인수식의 해석이나 표현들은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가리게 한다.
일방의 의견만을 청취하고 그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후회 막급한 경솔한 언행으로 귀결되는 경우들이 아주 많기도 하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기주의를 배척하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과 균형 잡힌 언행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분쟁이 일어나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려 하거나 무언가 이슈를 만들어 눈길을 잡아끌고 선동을 해야 할 경우에는 합리성이고 형평성이고 다 필요 없다.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불만을 더욱 증폭시키고 그들의 분노를 이끌어 내기만 하면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실관계의 확인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보다 자극적인 제목을 앞세워서 ‘…하더라’면 그만이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의 마타도어는 대개 이와 같이 이뤄진다. 언론은 국민의 여론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역대 어떤 정권을 막론하고 언론을 장악하려 애쓰거나 첨예하게 대립한 것이 아니겠는가?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실관계의 정확한 보도다. 정론직필은 언론의 생명과도 같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확인되거나 판결된 사실관계만을 갖고 편견을 버리고 보도가 돼야 한다고 본다. 하다못해 코흘리개들의 싸움에 있어서도 옳고 그름을 알기 위해서는 싸운 아이들의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예전부터 편향적이고 관리사무소에 불리한 보도들이 자주 있긴 했으나 결정적으로 두해 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한다는 신문사에서 특별취재반이라는 별도의 팀까지 꾸려서 아파트 관리와 관련된 내용의 기사를 시리즈로 연재한 적이 있다. 그 기획기사에서 얼토당토 않는 일방의 주장을 대서특필하는 무책임함과 종합계약이나 단일계약 또는 검침수당 등 관리소장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알만한 상식적인 내용에 대해 어이없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사실관계나 합리성은 따질 필요도 없이 일단 불만만 키우고 시선만 끌면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선동자와 다를 바 없고 한편으론 그렇게 몰지각하고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우리나라 메이저 신문사 기자라는 사실에 놀랐었다.
그 뿐이랴 그것을 기폭제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지상파 방송들도 앞 다퉈가며 ‘관리비가 줄줄 샌다’는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틈만 나면 관리사무소를 비리의 온상인양 두들겨 대고 급기야 서울시장까지 가세해 관리비 투명성을 거론한 덕에 관리사무소가 60·70년대 청계천변에 즐비하던 판잣집도 아니건만 이제는 대다수의 국민이 아파트 관리비는 장마철 판잣집에 빗물처럼 줄줄 새는 것으로 인식하고 관리 업무에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일이 다반사가 돼 버렸다.
오죽하면 경찰조사에서도 무혐의 처리된 관리소장을 아주 몹쓸 사람으로 만든 것으로도 부족해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고 있는 관리비를 또 공개하라 하고  합법적 기구인 입주자대표회의를 무시하며 듣도 보도 못한 초법적 자치회장을 안 시켜준다고 서울시청에 가서 울고 불며 생떼를 쓰는 황당한 사람을 수많은 사람들이 ‘난방열사’라고 이름 붙여 추앙할 정도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결과가 이쯤 됐으니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시선을 잡아끌고 선동을 하는 것이 언론의 목적이었다면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목적을 차고 넘치도록 초과 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금만 이성을 갖고 돌아보면 아파트 관리사무소만큼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만들어진 조직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최저임금으로 대변되는 직원들의 저임금과 한사람의 경조사만 있어도 비상근무에 돌입해야 하는 빠듯한 인원은 차치하고라도 불확실한 소액까지도 예산에 반영하라 하고 매달 관리비를 전국에서 누구라도 비교해 알아볼 수 있도록 공개토록 하며 황당하게도 200만원 이상 공사는 입찰을 실시토록 할뿐더러 수시로 관리실태 점검 따위를 하고 대개의 아파트는 매년 결산보고와 자체감사를 하고 있음에도 또 다시 비용을 들여 의무적으로 외부회계감사까지 받도록 하고 있으니 이렇게 소규모 조직에 다양한 장치를 갖고 사소한 부분까지 타이트하게 업무를 강제 규정하고 감시하는 조직이 또 있을까 싶다. 더구나 과연 이런 다양한 장치를 통과해서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긴 있을까 싶다.
결국 적발이라고 이름 붙여지는 잘못은 실제의 비리라기보다는 사소한 절차상의 문제이거나 문서 미비, 법규나 규정의 해석 차이나 착오 정도가 대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관리비가 줄줄 샌다’라고 단정 짓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이 근무하는 언론사 또는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공무원들의 내부는 어떤지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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