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이순신 장군의 날이 선 긴 칼도, 적을 섬멸시킨다는 학익진도, 어쩔 수 없었나보다.
제주의 유채를 물들이며 질풍노도로 한려수도 청정해역의 절경 사이를 뚫는 봄바람은 한산도의 동백을 담금질하여 기어이 빨갛게 물들이고 말았다.
봄맞이 나그네는 멀리 더 멀리서 올라오는 봄의 발자국을 마중하기 위해 통영대교를 지나 산양일주도로를 달려 지금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 위에 서 있다. 을미년 1월에 개통한 출렁다리는 13억여 원이 들은 현수교란다. 탄소배출 제로섬인 에코아일랜드를 잇는 출렁다리는 사람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도, 햇살도, 세월도, 역사도 함께 지나간다.
삶이란 극복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 오랜 견딤이 꽃피어 두 섬을 연결시켰나보다.
연대도 지겟길의 대나무 숲길에도 봄이 오고, 만지도의 커피 집 홍해랑 커피 잔에도 봄이 남실댄다.
한려해상 바다 백리 길에 파도도 지금 모두 푸른 잎으로 반짝인다.오순도순 무리지어 돋아나는 양지쪽의 파란 잎들을 가까이 가서 보면 쑥이요, 냉이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어 지난 밤 봄비에 얼굴을 말갛게 씻은 새싹들.
존재의 기립을 향한 모둠발은 생명의 눈부심이다. 천지만물에 사랑하고 싶은 날이 따로 있겠냐만 새싹이 움트고 노란 햇살이 아가의 숨결처럼 다가오는 지금이 가장 사랑하기 좋은 날이다.
만날재를 지나 방아재를 넘는 바람이 청양의 발걸음처럼 바쁜 것도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기 위한 것이란 걸 알았다.
지금 남도에는 들숨과 날숨의 생명이 있는 것들은 잎이 먼저면 잎이요, 꽃이 먼저면 꽃이다.
삶의 의미를 외치지 않아도 기립하는 생명력은 왜 이리 눈이 부실까.
폭설이, 혹한이 제아무리 날뛰어도 마늘밭 사이로, 보리밭 사이로 도란도란 거리며 아장아장 걸어오는 봄의 발자국 소리는 내 가슴에 울렁울렁 거린다.
성산아트홀에서, 문성대학교에서, 겨울을 버텨낸 난의 전시회에는 생명의 외경이 얼마나 찬란하던가. 뻗어지고 휘어지는 절제된 내재율로 청정 삶의 향기를 풍기는 저 난들은 얼마나 숱한 날들을 인고로 보냈을까.
제각각의 품성으로 제각각의 개성을 지닌 난의 자태에 우열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그 알량한 중생심을 발동시켜 심사기준을 들먹이고 등급을 매기는 게 참으로 부끄럽다.
제갈량의 동남풍이 불지 않아도 명주실보다 고운 서편제 가락으로 휘어지고 뻗어진 난이여. 은장도로 지켜낸 절개가 색깔에 따라 무늬에 따라 형태에 따라 모두가 최상이건만 나의 눈이 무디고 나의 마음이 어두워 비교를 하는 이 분별심을 어찌할꼬.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 정견(正見)이요,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으면 진지(眞知)라고 하던데.
나는 을미년에도 잎에서, 꽃에서 배운다.
마음은 후회가 없도록 심불참(心不懺)을, 얼굴은 부끄럽지 않도록 면불괴(面不愧)를, 허리는 아첨하지 않도록 요불굴(腰不屈)을.
그래서 그런 것일까. 경남대에서도 신입생에게 세상을 향해 싹이 되고 잎이 되라고 맨 처음 필수교양교재를 나누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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