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외딴섬에서 한 소년이 복통을 일으켰다. 유일한 ‘의료기관’인 보건지소로 달려갔지만 급성맹장염 증세를 보이는 환자를 치료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공중보건의는 119에 구조헬기를 요청했다. 119상황실에서는 가시거리 불량으로 운항 불가능을 알렸고 보건소에서는 다시 해경으로 전화했다. 해경은 위급환자 이송을 위해 즉시 헬기를 출동시켰다. 조종사 2명과 응급구조사, 정비사 등 4명을 태우고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섬까지 날아갔지만 짙은 해무 속에서 방파제에 착륙하려다 추락하고 말았다. 헬기에 탄 네 사람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차라리 소설이나 영화 속 장면이었다면 뜨거운 감동의 박수를 보내기라도 했겠지만 이 사고는 며칠 전 일어난 현실 속의 참사였다.
사고가 일어난 섬은 한반도의 남서쪽 바다 가장 먼 곳에 있는 가거도. 목포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달려도 4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외딴섬이다. 섬 사람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갑자기 아픈 사람이 생길 경우다. 날씨가 나쁘지 않아 배를 띄우더라도 생명이 촌각을 다툴 정도로 위급하면 소용없다. 그래서 119와 해경 등에서 긴급구조 헬기를 운용하는 것이다. 섬 사람들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고마운 존재다. 긴급구조 헬기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건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섬 중 헬기 착륙장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태반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은 금세 부끄러움으로 바뀌고 만다. 대한민국에 사람이 거주하는 섬은 432곳, 긴급상황에 대비해 헬기 이착륙장을 갖춘 섬은 불과 83곳, 이 중 야간 안전시설이 설치된 곳은 고작 11곳이라 한다.
가거도는 헬기 이착륙장이 설치된 83곳에는 들었지만 야간 안전시설은 없었다. 첨단 헬기 구조시스템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섬 주민들의 손전등 빛에 의존해 착륙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사고지점은 공교롭게도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잃어난 곳과 같은 남서 해역이다. 조명탄을 쏘아 올려 야간수색 작업을 벌이는 모습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되새기게 했다. 검게 일렁이는 바닷물에 반짝이는 조명탄 불빛은 또다시 비명과 슬픔의 불빛이 되고 말았다.
해양경찰청은 해체됐다.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편입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비운을 당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세월호 구조에 나섰던 해양경찰들은 침몰하는 배가 두려워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구조에 나섰다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국민이 분노했다. 물을 무서워하는 해경이라니….
 그들은 그런 것도 모자라 구조에 적극 임했다고 인터뷰하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그런 비겁하고 무책임한 모습이 극약처방의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찰과 소방대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용감하고 희생정신도 투철하다. 다만 잘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화염에 휩싸인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중에도 “안에 사람이 있다”는 한 마디에 뒤돌아보지 않고 뛰어드는 소방관, 사고를 막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경찰관의 모습은 영화에서만이 아닌 현실에도 많이 있다.
하지만 언론의 속성상 미담은 잘 보도되지 않는다. 이번 사고처럼 추락하고 목숨을 잃을 정도가 돼야 뉴스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뿐이다.
공동주택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관리비리, 난방비리, 입찰비리 같은 소식에는 필요 이상으로 호들갑을 떨지만 우수단지 선정, 모범관리 표창과 같은 훈훈한 모습은 본지와 같은 전문지에서나 다뤄질 뿐이다.
그러나 서운할 건 없다. 용감한 경찰과 살신성인의 소방대원이 주목받지 않는 건 그것이 그들의 임무이고 사명이기 때문이듯, 양심적이고 모범적인 주민대표와 관리직원은 그것이 기본인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최고의 심판은 심판이 없는 듯 보이는 것이고, 공동주택 최고의 관리는 관리 자체가 입주민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이다.
주목받지 않는 곳에서 묵묵한 사람. 그 사람이 진짜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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