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석조약사불 좌상

▲ 약사여래상

경주 남산 용장골에서 출토했으며 통일신라 8세기 말~9세기 초의 석불로 추정하고 있다. 모든 질병뿐만 아니라 무지의 병까지도 고쳐준다는 부처인 약사불이다. 왼손에 약단지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약사불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처음 박물관으로 옮겼을 때에는 머리와 몸체가 떨어져 있었는데 1975년에 복원했다. 그런데 약단지를 빼면 석불암 본존물과 비슷하다. 오른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습인 항마촉지인,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모습(편단우견) 등이 석굴암 본존불과 닮았다. 석굴암 본존불이 만들어진 다음부터 곧바로 이 불상과 닮은 상이 만들어졌는데 이 불상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석등

등은 불을 밝히는 도구다. 석등은 돌로 만든 등기구이나 절에서 뿐만 아니라 궁전, 관청, 여염집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절에 석등을 많이 만들었을까. ‘등지인연경(燈之因緣經)’이라는 불교경전에는 등불은 부처님의 진리를 비춰줌으로써 모든 무리들이 착한 길을 택하게 한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복을 받기 위해서다. ‘시등공덕경(施燈功德經)’에는 탑과 불상 앞에 등불을 밝히면 복을 받아 수미산(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는 곳) 꼭대기인 도리천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경전에는 죄가 없어진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등은 백제인들이 만든 익산 미륵사터 석등이다. 팔각 연꽃무늬 상대석과 팔각 화사석(등불을 밝히는 돌)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가늘고 긴 팔각기둥의 석등이 주로 만들어졌다. 이와 함께 둥그런 기둥 중간에 굵은 마디를 두어 북 모양을 띠는 석등, 사자 두 마리가 화사석을 떠받치고 있는 석등도 만들어졌다.

 

▲ 생의사 미륵삼존상

◈생의사 미륵삼존상-삼화령 애기부처

경주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문화재로 꼽힌다. 전시물에 손을 대지 못하게 경고하고 있음에도 관람객이 슬글슬금 만진 손때가 발등에 까맣게 묻어 있을 정도다. 그 인기의 비결은 착하게 생긴 동안(童顔)의 표정이다. 그래서 ‘삼화령 애기부처’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장창골 삼화령에서 발굴된 것을 경주박물관에 옮겨다 놓은 것이다.
의자에 앉은 듯한 자세는 본존상 중 매우 드문 것이다. 높이 1.57m 폭 90㎝ 정도며 몸에 비해 머리와 손이 크다. 부처의 위엄을 표시하는 삼도가 생략됐으며 입가에 담긴 미소 역시 보는 이의 긴장을 풀어준다. 법의는 어깨를 지나 전신을 덮고 있으며 가슴 중앙에는 희미하게 만자를 양각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크기와 양식이 거의 같은 두 보살 입상은 본존여래상에 비하면 매우 왜소하다. 머리는 정면과 좌우에 꽃무늬를 새긴 삼면보관을 썼으며 두 눈은 여래와 마찬가지로 반구형으로 돌출시켰다. 입가의 미소가 무척 부드럽고 귀여워 친근하다. 삼도 역시 생략됐다. 옷자락은 두 어깨를 지나 허리 아래와 다리 부분에 U자를 그리면서 다시 양손에 걸쳐진 뒤 아래로 길고 넓게 퍼져 있다.
수인(手印)은 두 보살상이 각기 다른데 오른쪽 보살은 오른손을 가슴 아래로 굽혀서 줄기가 긴 연꽃을 들었으며 왼손은 내리고 있다. 두 다리는 바르게 세웠으나 왼쪽 다리를 약간 굽혀 율동감을 보이고 있다.
왼쪽에 있는 보살은 오른손을 앞으로 굽혀서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잡고 있으며 왼손은 어깨까지 들어서 받치고 있다. 다리는 오른쪽 보살과 반대로 오른쪽 다리를 약간 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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