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여행 떠나GO!


 

이 성 영  여행객원기자
laddersy@hanmail.net

안개에 가린 섬.
낮은 파도가 치는 듯 날아가는 새.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몽돌들.
수 만년 바다의 시간을 말해주는 바위.
아름드리 신비한 상록수림.
포구에서 장난치며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
일몰이 아름다운 곳.
환경부가 아름다운 섬으로 지정한 황도, 횡견도, 오도와 함께 10여개의 무인도를 포함해 외연열도로 불린다.

아주 오랜 이야기

▲노랑배에서 바라보는 일몰(상투바위와 매바위. 뒤로 소청도, 대청도가 일몰에 젖다)  
배는 떠났다. 섬의 길이만한 하얀 백사장으로 형성된 호도. 뭍에서 가깝고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아름다운 섬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렸다. 비어 있는 선실을 어슬렁거리며 이제야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로움도 생긴다. 녹도를 향하는 배의 갑판에서 호도의 해변을 사진에 담아보기도 한다.
조용한 바다, 하얀 물보라, 멀어지는 섬, 시원한 바람을 쐬며 그렇게 갔을까. 대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53㎞ 거리에 있으며 보령시 70여개의 섬 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 호도, 녹도를 거쳐 두 시간을 달려 새하얀 해무가 섬을 감싸고 있어 연기에 가린 듯 하다해 붙여진 이름 외연도.
동쪽의 봉화산(272m)과 서쪽의 망제산(171m)이 마을을 감싸고 낮은 당산은 마을을 뒤에서 어루만지듯 등대와 등대 사이 남쪽으로 열린 포구를 보고 있었다. 마을과 바다의 관문, 나들터 매표소는 깔끔하게 단장돼 있고 산과 산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민국의 413개 섬들 중에 4개의 ‘가고 싶은 섬’을 선정해 지원했다. 그중에 청산도, 소매물도, 홍도는 그 전부터 많이 알려진 저마다의 특색 있는 섬들이었다. 반나절이면 걸어서 돌아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외연도. 상록활엽수림과 낙엽활엽수림이 수백 년간 공존하며 질서를 잡아 신비의 식생을 이루고 있는 섬. 6·25 직후 민속사를 연구하는 국립조사단원들이 이곳의 민속사를 알아보기 위해 갔었지만 당산에 있는 숲은 주민들의 반대로 접근을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집이 있는 신성한 산이었기 때문이다. 그 숲은 1962년 식물 천연기념물 136호로 지정됐다. 당산은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 12종의 상록활엽수와 팽나무, 찰피나무 등 33종 낙엽활엽수가 공존하고 있다. 그렇게 신비한 숲이 보존된 것은 신성 시 되는 당집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 항우와 유방의 초·한 전쟁의 틈바구니 속 한나라에게 패망한 제나라의 장군 전횡은 그를 따르는 군사 500명을 데리고 섬으로 피신했다. 그는 군사들과 유민들을 살리려 자결했고 군사 500명도 따라서 자결했다.
중국 청도의 전횡도에 가면 그들을 기리는 500 묘가 있다. 동북공정의 중국 역사이다. 그러나 이곳의 전설은 외연도에 정착해 자결한 것으로 구전돼 오며 전망 좋은 누적금의 전설도 때를 같이 한다.
누적금은 전횡 장군이 바위에 낫가리를 쌓아 노적처럼 보이게 했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조선 중기부터 전횡 장군의 신명어린 충절을 기리는 신당이 당산에 자리 잡았다. 해마다 음력 4월과 11월에 마을에서는 소 한 마리씩을 뭍에서 배에 싣고 와 당산에서 제를 지냈다. 그 소를 지태라 한다. 몇 해 전부터는 음력 2월 보름(15일)에 산제, 당제, 용왕제를 지내는 풍어당제가 크게 열린다. 170가구 마을의 안전과 풍어를 기리는 마을의 축제이다. 아주 오랫동안 내려온 섬의 풍습을 이어가는 살아 있는 민속 사료로 그 가치가 크다.
 
달빛에 춤추고 별빛에 노래하다

▲당산의 숲-식물천연기념물136호(당집이 있다. 상록활엽수와 낙엽활엽수가 공존하는 신비의 숲이다)   
꿀을 찾는 동박새가 날개짓 하면 당산의 고목 사이로 동백꽃이 붉게 핀다. 가슴을 부풀리며 황금새는 아시아 동남부에서 날아온 딱새, 붉은배지빠귀 등과 봄, 가을 잠시 머물다 나그네처럼 떠난다. 후투티는 바다의 파도를 흉내내듯 날으다 인디언 추장 같은 관을 흔들어 대며 파도소리에 여름을 식힌다.
황로, 쇠유리새, 물래새도 날아든다. 성대모사의 달인 노랑때까치는 다른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여름 한철 이리저리 간섭하기 바쁘다.
‘가고 싶은 섬’ 선정 이후 섬은 새롭게 단장을 했다.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숲은 바다로 연이어 길을 내었고 파도소리가 머무는 곳의 야영 장소는 나무로 데크를 조성했다. 백패커들의 요람이다. 푸른 외연열도를 바라볼 수 있는 봉화산 등산은 여유 있게 두 시간 정도 걸으면 정상의 봉화를 올렸던 봉수대를 거쳐 내려 올 수 있다. 파도 소리 벗 삼아 봉화산을 중심으로 예전 나무꾼들이 다니던 길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부담 없어 좋다.
여객선 승선장에서 소공원을 따라 마당배, 꼬깔배, 노랑배로 가거나 반대로 돌아오면 된다. 산과 바다, 바위를 만끽할 수 있는 트레킹 길이다. 붉은 바위로 이뤄진 편편한 마당배를 거쳐 꼬깔배, 노랑배로 가는 길은 호젓하다. 바위 벼랑에서 풀을 뜯고 있는 야생 흑염소들의 모습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바다에서 보면 바위가 노란빛을 띄고 있고 노랑 뱃머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 노랑배. 그 전망대에서 보는 일몰은 여행의 로망이다. 상투바위와 매바위가 일몰의 길목을 지키며 대청도, 중청도, 소청도의 푸른 멍물은 검붉어진다.
▲고라금-바다는 맑은 옥색빛을 더하고 햇빛이 반사되면 크고 작은 몽돌들이 누적금, 돌삭금, 명금의 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인다.    
대청도는 가마우지의 서식지다. 옹진군 백령도 인근에도 이름이 같은 유인도인 대청도, 소청도가 있다. 하지만 이곳은 모두 손에 넣을 듯 작은 바위섬이다. 노랑배 선상의 뱃머리에 앉아 마음껏 붉어지는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는 시간. 때마침 여름이 지나 한껏 자란 풀들을 예초기로 베며 올라오던 파출소 이철희 소장은 “예전에는 야영을 허용했지만 사람들이 오물들을 잘 치우지 않아 야영 금지구역으로 지정했어요~ 노랑배에서 보는 일몰은 최고지요~ 오늘은 약간 탁하네요~ 야영을 하시려면 명금이나 고라금 쪽으로 가보세요”
해가 반쯤 잠기도록 섬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만 담그고 명금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백구는 그때까지 저만치 앉아 있다 다시 앞장서 간다. 백구는 포구에서 등산복 차림의 나를 보고 쫓아오다 봉화산을 오를 때 앞에서 안내했던 다리가 미끈하게 잘 빠진 하얀 진돗개이다.
“이름이 순이에요~ 주인이 복씨 성이어서 복순이라고 불러요~ 뭍사람들을 보면 기특하게 안내를 해요~ 새끼때 뭍에서 데리고 왔는데 두 살 되었지요”
백구는 새 울음소리에 귀를 쫑긋. 나비가 날아가면 하늘 쳐다보고. 풀무치가 뛰면 앞발로 이리 치고 저리 치며 풀 숲에 코를 들이박고 냄새를 맡았다. 바뀌는 계절에 대한 호기심이다. 산을 내려와 어두워진 포구. 물도 나눠 마시며 같이 걸었던 백구는 바닷가에서 아이들 뛰노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둠 속을 걸어 랜턴 불에 의지한 채 텐트를 쳤다. 나무 데크 주변은 작은 연분홍 꽃들이 불빛을 받아 별처럼 반짝인다. 고마리 꽃이다. 여름을 지나 한적한 곳에 고마리 덩굴들은 뭍사람들이 지나간 흔적들을 지우고 있었다. 고마리는 마디풀과로 전국 개천이나 산야에 덩굴로 무리지어 자라는 1년생 풀이다. 물과 오염된 땅을 정화시키는 고마운 풀이기도 하다.
고라금에서 보는 밤하늘은 별들이 쏟아진다. 봉화산 위로 떠오르는 달은 보름을 며칠 지난 찌그러진 달이었지만 밤바다와 온 섬을 환하게 비춘다. 바다는 달빛에 출렁이고 파도는 별빛에 노래하고 있었다. 서쪽의 망제산을 넘으면 섬의 유일한 초지지역인 고래조지가 있다. 바다에서 보면 고래의 성기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푸른 바다가 초지와 연 닿아 열도의 섬들과 어우러져 이국적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고라금, 누적금, 돌삭금, 명금은 수천년 동안 먼 바다 파도가 만들어낸 크고 작은 몽돌들이 바다 속까지 잔잔히 깔려 맑은 옥색 빛을 더 한다. 사람의 접근을 막았던 당산은 나무 데크로 길을 만들어 손쉽게 수 백 년 묵은 나무들과 대화를 하게 했다. 이곳의 상징 같았던 동백나무 연리지인 사랑나무는 태풍 곤파스 때 연결된 가지가 부러졌다. 세월이 갈라놓은 질투의 흔적일까. 그래도 더 오랜 시간을 대비하며 숲은 후계목 들을 길러내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잔잔한 포구. 방파제의 빨간 등대와 등대 사이로 해녀들을 태운 배가 들어온다. 정박한 고깃배들은 만선의 깃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틀간의 여정. 간간한 밑반찬으로 나온 볼락 조림에 참돔 한 접시. 소주 한잔으로 인생의 무게 같은 무거운 배낭을 바다에 내려놓는다.
 
 

 
>>여행정보
◈대천연안여객터미널 ☎1666-0990
◈신한해운 ☎041-934-8772~4       운항시간(4~9월 08:00 14:00 / 10월 토, 일 10:00 13:00 / 11~3월 10:00)
◈예약-가보고 싶은 섬
◈숙박-외연도펜션(☎041-936-6667) 20여개의 민박
◈식당-어촌계 식당(백반) ☎041-931-5750     추억식당(자연산 횟집) ☎010-3472-7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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