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인 관리주체는 관리사무소장”


관리현장 한목소리…불합리한 제도 바로잡아야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관리실상을 직시하지 못한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및 제도방향으로 인해 아파트 관리현장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2010년 7월 6일 제정된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이하 선정지침)은 그동안 수많은 민원 및 분쟁과 소송을 양산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선정지침 제정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9월 11일 선정지침을 개정했지만 개정조항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그 폐해가 끊이질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선정지침 제2조 지침의 적용대상에서 ‘관리주체(공동주택 관리사무소장을 말한다)’를 ‘관리주체’로 개정해 관리주체를 관리사무소장으로 명시했던 부분을 삭제했다. 이에 따라 현행 주택법에서는 위탁관리의 경우 주택관리업자를 관리주체로 정하고 있고, 선정지침 별표4에서 주택관리업자 선정과 하자보수보증금으로 직접 보수하는 공사 외의 사업자를 선정할 때는 관리주체가 계약자가 되므로 주택관리업자가 직접 계약을 체결하거나 관리사무소장이 주택관리업자로부터 위임을 받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종전에는 관리방식에 상관없이 관리사무소장이 각종 용역계약을 체결해왔지만 개정 이후에는 자치관리 아파트에서는 관리사무소장이 각종 사업자 및 용역계약의 주체가 되나 위탁관리의 경우에는 주택관리업자가 계약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개정 당시에도 현실과 괴리돼 실효성이 없다며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관련기사 제802호 2012년 9월 19일자 1·7면 게재>
 
 
권한 없고 책임만 떠안는 관리소장
 
아파트 관리책임자인 관리사무소장이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주택관리업자로부터 위임을 받지 않고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안산시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례는 관리사무소장에게 권한은 없고 책임만 가중되는 공동주택 관리제도의 현주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사건이 발생한 안산시 아파트의 경우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지만 결론은 동일하다. 우선 위탁관리업체의 주장은 이렇다. 입대의 회장이 추천해온 관리사무소장을 채용할 때부터 경력 등이 탐탁지 않은데다 민원이 많은 단지였기 때문에 다른 단지에 위임장을 발급한 것과는 달리 별도로 관리했다는 것이다. 또한 관리사무소장이 위임을 요구했을 당시에는 이미 입찰공고가 나간 뒤였고 공사를 반대하는 입주민이 위임문제로 민원을 제기, 재입찰공고를 내라고 요구했지만 관리사무소장이 그대로 강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리사무소장의 주장은 또 다르다. 입찰공고를 내기 전부터 위임을 해달라며 위임장과 각서를 들고 직접 찾아갔지만 주택관리업자가 의도적으로 위임을 해주지 않았으며 진행 중인 입찰공고를 철회하고 다시 재입찰공고를 내기에는 무리였다는 주장이다.
 
선정지침 어긴 경우 다반사
민원 제기된 아파트만 처벌?

 
관리사무소장과 주택관리업자의 주장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현재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관리사무소장이 주택관리업자로부터 위임을 받지 않고 계약을 체결하고 있을 정도로 계약주체와 관련한 개정조항은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이 접수되면 처벌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방관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라고 꼬집는다. 
경기도 안양의 모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선정지침 개정 이후 포괄위임과 관련해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위임을 받지 않고 계약체결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렇다고 공사계약건마다 위임을 받을 수는 없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안산시의 경우처럼 주택관리업자가 위임을 해주지 않으면 입대의에서 의결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아니냐”면서 “해당 아파트 사정을 잘 모르는 위탁회사가 입대의 의결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계약 건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말이 안 된다”며 문제 많은 선정지침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과태료 부과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의 진행을 맡은 이정하 변호사는 소장을 통해 “주택법의 관련조항을 살펴볼 때 공사 및 용역 등 사업자의 선정과 계약주체는 관리사무소장으로서, 정당한 계약체결이 이뤄졌다”며 “과태료 처분을 받아야 할 당사자는 관리사무소장이 아니라 고의로 위임장이나 대리행위를 하지 않은 주택관리업자”라고 밝혔다.
 
 
관리방식에 따라 관리주체 변경
관리주체 일원화 필요해

 
위탁관리 아파트의 계약주체에서 관리사무소장을 배제한 것에 대해 국토부는 ‘관리주체를 일원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침을 제정한 2010년 7월 6일 당시에는 왜 굳이 지침상 관리주체를 관리사무소장으로 보도록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더욱이 지침을 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법상 관리주체는 여전히 일원화 체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행 주택법 제2조 제14호에서는 관리주체의 정의에 대해 공동주택을 관리하는 자로서 자치관리 아파트의 경우 관리사무소장, 관리업무 인계하기 전에는 사업주체, 위탁관리의 경우에는 주택관리업자, 임대주택의 경우에는 임대사업자로 규정해 상황에 따라 관리주체가 달라진다. 해당 아파트의 총괄 책임자인 관리사무소장이 실질적인  관리주체라는 점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관리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위탁관리업체들도 종전 규정 제안

 
사실 위탁관리업체들 사이에서도 개정된 지침상의 계약주체와 관련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지침을 지키고 있는 위탁관리업체가 없을 정도다.
문제가 불거진 아파트의 위탁관리업체도 지침개정이 현실과는 맞지 않아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중도에 계약해지를 당한 해당 아파트 주택관리업자 H사 관계자는 “관리사무소장뿐만 아니라 업체도 피해자”라며 “종전대로 계약주체를 관리사무소장으로 해줄 것”을 제안했다. 
국내 공동주택 관리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관리(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관리(주)가 관리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도 선정지침이 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종전처럼 관리사무소장이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명무실한 조항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부 지역 아파트 위탁관리업체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에게 위임장을 발급해주는 곳도 없지는 않다. 전북 전주지역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전주지역의 경우 위탁관리업체에서 관리사무소장에게 포괄위임장을 전달해 업무처리를 하고는 있지만 관리현장과 현실적으로 맞지 않아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면서 정부의 주목구구식 정책운영을 지적했다.
인천의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또한 선정지침이 개정됐기 때문에 주택관리업자로부터 전체 위임을 받아 계약을 체결하고 있지만 계약 건별로 회사에 보고해야 하는 등 업무가 더욱 과중돼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공사 계약주체 변경으로
주택관리업자 공사개입 의혹 높아

 
이와 관련해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관계자는 “현재 국토부에서 지침에 대한 유권해석을 통해 계약체결 건에 대해 관리사무소장이 주택관리업자로부터 포괄위임 또는 건별 위임을 받도록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주택법상에서 규정한 관리사무소장의 업무에는 각종 공사계약의 체결과 관련한 집행업무도 포함돼 있고 실질적인 관리주체가 관리사무소장이므로 굳이 위임을 별도로 받을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이며 업무의 일관성과 효율성 측면에서도 적합하지 않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법무법인 산하 오민석 변호사도 본지 제804호 2012년 10월 3일자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각종 공사와 용역업체의 선정을 위한 입찰 및 계약의 주체에서 관리사무소장을 배제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는 “현실적으로도 수많은 단지를 관리하는 주택관리업자보다는 해당 아파트의 운영 실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주택관리사가 공사 및 용역업체의 선정업무에 더욱 적합하다”며 “고시 개정 이전에도 일부 몰지각한 주택관리업자들이 각종 공사 및 용역업체의 선정에 영향력을 발휘해 물의를 빚는 일이 발생하곤 했는데 개정 고시가 이러한 여지를 더욱 넓혀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총액도급제를 가기 위한 수순이 아니겠냐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해당 개정조항은 지난해 정부가 총액도급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개정했던 사항으로, 개정과정에서 총액도급제 문구가 아예 빠지면서 이 조항만 남게 돼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원, 지침은 ‘행정규칙’에 불과
 
이러한 가운데 법원에서는 선정지침을 위반했다고 해서 입찰결과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며, 선정지침의 제정된 취지가 투명성과 공정성에 있다는 점을 감안, 이를 현저히 침해할 정도의 중대한 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입찰은 유효하고, 이에 따라 위반사항에 대한 지자체의 시정명령 또한 취소하라는 판결을 속속 내리고 있어 선정지침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부 “불합리한 규정 있다면 보완”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우선 표면화된 사실만으로 판단했을 때 입대의가 의결한 사항에 대해 주택관리업자가 관리사무소장에게 위임을 해주지 않아 계약체결을 하지 못한다면 주택관리업자는 업무를 기피한 것이기 때문에 위·수탁관리계약의 해지사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주택법에서 정한 관리사무소장의 업무와 선정지침에서 정한 업무는 별개로 지침은 특별법적 성격으로서 위탁관리의 경우 관리사무소장은 주택관리업자로부터 위임을 받아 계약체결업무를 해야 한다며 포괄적 위임이든 건별 위임이든 주택관리업자로부터 위임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선정지침에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개정을 통해 보완해야겠지만 개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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