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한국셉테드학회 이 경 훈 회장


 
범죄란 흔히 동기부여가 된 범죄자, 취약한 피해자 그리고 범죄의 기회를 제공하는 환경적 요인의 3요소가 충족될 때 발생한다. 이와 관련해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자 (사)한국셉테드학회장인 이경훈 교수는 3요소 가운데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는 환경뿐이라고 조언하며, 셉테드의 논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도시건축 환경에서 범죄의 기회를 제공하는 환경특성을 규명하고 변화시킴으로써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범죄에 대한 사후 대처가 아닌 예방이라는 점이 바로 셉테드가 중요한 이유라고 전한다. “실제 외국에서는 도시건축 환경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건축조례 등을 통해 범죄예방설계를 적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며 “셉테드에 의해 범죄발생률을 상당 부분 감소시킨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고 말하는 이 교수를 만나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의 범죄예방과 관련된 셉테드의 중요성 등에 관해 들어본다.
 
 
 
#한국셉테드학회의 궁극적인 설립 취지는?

한국셉테드학회는 도시환경 및 건축환경의 변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의 예방이 범죄문제 해결의 근본적 방안이라는 것에 공감하는 건축학, 도시계획, 범죄학, 경찰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 및 실무자들이 모여 설립했습니다.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졌던 노력이 한국셉테드학회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때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한국셉테드학회는 범죄로부터의 안전 확보와 인간의 존엄성 확보를 위해 셉테드라는 학문분야의 정립, 학제 간 융합적, 통섭적 연구의 활성화 등 셉테드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학제 간, 혹은 산학 간 소통의 장 마련 및 국제적 관련 학회와의 교류 등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셉테드 전문가 교육 및 양성, 셉테드에 대한 국민적 의식과 문화 고양, 셉테드 관련 산업의 육성 및 경쟁력 기반 제공, 셉테드 관련 정책 및 디자인 개발 등 실천적 전략을 구현하기 위해 창립됐습니다.
 
 
 
#셉테드의 개념과 기본원리는?

셉테드란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의 약자인 ‘CPTED’를 지칭하고 ‘범죄예방환경설계’라고 번역할 수 있으며 ‘도시건축환경의 적절한 설계와 효과적 사용을 통해 범죄발생과 불안감을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증대시키는 설계기법’을 의미합니다. 셉테드는 크게 접근통제, 자연적 감시, 공동체 활성화 전략을 기반으로 파생된 자연적 감시기회 확대, 자연적 접근통제, 영역성 강화, 행위지원, 명료성 강화, 유지관리 등 6개의 기본원리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자연적 감시기회 확대’란 범죄취약시설 및 공간을 시선 연결이 좋은 곳에 배치하고 잠재적 범죄자의 은신을 방지할 수 있도록 투시형 구조 및 재료 사용, 적절한 조도유지 및 조경 시 순차적 식재 등으로 자연적 감시 기회를 증대하는 전략입니다. ‘자연적 접근통제’란 범죄 대상물로 잠재적 범죄자가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다양한 설계전략을 의미하며, 이는 도로형태나 교통패턴의 변화, 상징적, 물리적 장애물의 사용 등을 통해 구현할 수 있습니다. ‘영역성 강화’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 간의 위계를 명확하게 디자인함으로써 주민에게는 사적영역에 대한 영역적 태도, 관리행위를 증대하는 동시에 잠재적 범죄자에게는 사적영역에 진입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설계전략을 의미합니다. ‘행위지원’은 다양한 행위를 유도할 수 있는 시설계획 및 디자인을 통해 외부공간을 활성화시켜 주변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시기회를 늘려주는 전략입니다.
 
 
 
#셉테드의 적용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단순한 범죄발생률 감소뿐만 아니라 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함과 동시에 생활의 질 향상, 커뮤니티 복원 효과 등 다양한 부수적 효과가 있습니다. 흔히 셉테드라고 하면 CCTV 혹은 각종 센서 등과 같은 하드웨어 설치만을 떠올리는데 이로 인해 도시건축환경을 요새화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상물 강화 전략은 셉테드가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전략 중 극히 일부이고 하드웨어보다는 오히려 디자인에 의해서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다양한 효과를 얻자는 것이 셉테드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즉 셉테드의 기본 전제는 아름답고 쾌적한 도시건축환경을 만듦으로써 범죄도 줄이고 환경의 부가가치도 높인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생활가로변에 근린시설 및 주민 공동시설 등 생활행위 촉진요소를 분산 배치하는 것은 자연감시 기능을 촉진시켜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뿐 아니라 커뮤니티 간의 교류를 활성화시킴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커뮤니티를 복원하는 효과를 갖습니다. 또한 영역 간의 위계를 명확히 하고 전이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범죄예방 효과 외에도 도시경관 개선, 보행자 편의성 향상, 개별 주호의 프라이버시 향상 등 주거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그동안 신도시 위주의 개발정책과 도시경제의 구조개편에 따른 전통적 도시산업의 사양화로 구도심의 쇠퇴 및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셉테드는 침체된 도심 주거지의 활력을 재생시키고 도시주거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셉테드를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적용할 수 있는 예가 있다면?

최근 범죄로부터의 안전이 주거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부가가치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자극받아 민간 건설사에서도 독자적 셉테드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저도 H건설, D산업 등의 의뢰를 받아 셉테드 디자인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데 실제 D산업에서는 최근 자사 아파트 브랜드의 TV 광고에서도 셉테드를 내세울 정도로 관심이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지하주차장은 입주민의 불안감이 높은 장소입니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지능적 범죄자는 교묘하게 CCTV를 피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어 CCTV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하주차장 내에 헬스시설, 독서실, 관리사무소 등 주민공동시설을 개방형으로 설계해 배치한다면 야간에도 주민공동시설을 이용하는 입주민이 주차장 내부를 감시할 수 있어서 범죄 불안감을 저감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야간에 환한 공동시설이 범죄자에게도 큰 심리적 억제요인이 될 수 있어 범죄예방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파트 외벽에 설치된 가스배관은 절도범에게 좋은 침입경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10층 이상의 고층가구에 배관을 타고 침입한 사례가 보도된 바 있습니다. 현재 상당수의 아파트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배관에 가시철망을 씌우거나 덮개를 설치하고 있지만 이는 미관상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기본적 해결방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배관을 후면 발코니와 일체화해 외벽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계획하거나 배관을 창문으로부터 1.5m 이상 이격시켜서 배관을 타고 올라가더라도 창문으로 침입할 수 없도록 하는 디자인 기법을 통해서 이런 문제를 원천봉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사례는 앞서 설명한 기본원리를 응용하면 무궁무진하게 개발될 수 있습니다.
 
 
 
#셉테드를 적용하지 않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계획단계에서부터 셉테드가 적용되지 않은 아파트라도 범죄환경 개선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전략이 있습니다. 첫째, 철저한 유지관리를 통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 무질서는 잠재적 범죄자에게 커뮤니티의 사회통제기능이 약화됐다는 징후로 판단됩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에서 시사하는 것은 깨진 유리창 하나가 방치될 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청결하게 환경을 관리하고 사소한 시설파손이나 낙서 등의 반달리즘을 신속하게 복원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조경, 특히 보행로나 주동 저층가구 주변의 조경을 잘 관리해서 항상 시각적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또한 엘리베이터 박스 후면 벽에 거울을 부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주동 내 공용공간 중 가장 많은 범죄가 발생하는 장소 중 하나인데 특히 최근에는 지하주차장에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통합형으로 디자인되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심야시간대에는 위험한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후면 벽에 거울을 부착하면 거울을 통해 엘리베이터 내 구석진 공간에 몸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인지할 수 있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 미국 일부 지자체에서는 엘리베이터 내 후면거울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현재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셉테드와 관련해 추진하고 있는 연구 및 학술활동이 있다면?

지난해 10월부터 아파트 등 공동주택 단지의 범죄예방환경설계 인증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영국, 네덜란드, 일본 등에서는 범죄예방환경설계 인증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셉테드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인증을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사)한국셉테드학회에서 실시하는 인증은 크게 설계인증, 본 인증, 유지관리 인증 등 세 단계로 구분해 부여됩니다. 아직 인증 초기 단계라서 본 인증 및 유지관리 인증을 받은 사례는 없지만 설계인증의 경우 D건설에서 최초로 인천시 계양구 소재 아파트 단지에 대한 최초 인증을 받았으며, 현재 H건설의 화곡지구 아파트 단지가 인증을 신청해 평가 중에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건설사에서 현재 인증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학회에서 실시하는 공동주택 범죄예방환경설계 인증제도가 안전한 주거환경을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비록 연혁은 일천하지만 한국셉테드학회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건축환경을 구축하는데 기여하고, 앞으로도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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