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미 제주 화북1아파트 관리사무소장
김연미 제주 화북1아파트 관리사무소장

한 달 아파트 관리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장기수선충당금이다. 관리비 항목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마는, 특히 장충금은 아파트의 안전과 기능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비용이다. 이 때문에 쉽게 줄일 수도 없다. 더군다나 관련법으로 부담 시기부터 부담 대상자, 사용에 대한 절차까지 세세하게 정해 놓고 있어 그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는 항목이다. 

그럼에도 당장 관리비를 부담하는 입주자 입장에서는 우선순위가 밀리는 항목이기도 하다. 입주 후 1년이 경과되는 시점부터 장충금을 적립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입주한 새 아파트에서는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발생할 비용 부담의 필요성이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입주 초기에는 대부분 최저금액의 장충금이 부과되도록 관련 규정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후유증이랄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오래된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돌아간다. 그동안 아파트 외부 도색 몇 번 칠한 게 전부인 것 같은데, 노후한 시설물 하나 교체하려고 할 때마다 그 많던 장충금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통장이 텅 빈 느낌이다. 부랴부랴 교체 주기를 뒤로 미루거나, 장충금을 인상할 수밖에…. 법정 교체 주기가 있어 교체를 미룰 수도 없는 시설물인 경우, 교체 주기에 맞닥뜨리게 되면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 큰 비용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입주자들의 부담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장충금은 장기수선계획에 의해 결정된다. 아파트의 내용연수를 상정하고 아파트 시설물 중에서 법규에 정한 시설물들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시설물들의 노후도 등을 감안해 교체 주기와 보수 주기를 계획한다. 아파트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소멸하는 순간까지 아파트의 모든 시설물이 안전하게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아파트에 설치된 시설물들이 항상 안전하고 정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보수와 교체 계획을 세우고 그 비용에 맞게 미리 비용을 확보하고, 계획에 맞게 보수와 교체공사를 하면 되는 이 간단한 것이 실제로는 여간 골치 아프고 어려운 게 아니다. 그 난감함은 장기수선계획을 세울 때부터 시작된다. 법규와 실제 비용을 감안해 계획을 세우다 보면 입주자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장충금을 내야하고, 적당한 선에서 비용을 타협하고자 하면 법규에도 문제가 있고 안전성도 담보할 수 없다. 법대로 한다고 입주자들의 부담을 무시할 수도 없고, 입주자들의 부담을 덜어준다고 법규를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장기수선계획은 3년마다 검토 조정이 가능하다. 그 외의 기간에 이를 조정할 경우 입주자 과반수의 서면동의가 필요하다. 결국 그간의 문제점들을 다 모았다가 장기수선계획을 조정할 때 한꺼번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점검과 계획이 있다고 해도 시설물들이 어디 계획대로 고장이 나고, 계획대로 작동이 멈춰주는 것인가. 멀쩡히 잘 돌아가던 시설물도 어느 날 갑자기 멈출 수 있고, 당장 멈출 것처럼 비실거리던 시설물도 몇 년이고 멀쩡하게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 봐도 계획과는 무관하게 일이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보완책을 법규가 정하고는 있지만 법이란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던가. 

올해는 우리 아파트도 장기수선계획을 검토하고 조정하는 해다. 연초부터 시설물을 재점검하고, 비용을 산출하고, 어떻게 조정해야 할 것인지 매일 장기수선계획을 펼쳐놓고 들여다보는 중이다. 20년을 넘어가는 아파트 내용연수에 따라 굵직한 공사들을 일부 완료하긴 했지만, 언제 어디서 문제가 터질지 불안한 게 사실이다. 이미 최고치의 장충금을 감당하고 있는 입주자들에게 도저히 더 큰 비용을 부담하라고 할 수가 없어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장기수선계획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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