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격일제 근무 등 인과관계 있어”

양쪽 눈이 실명된 아파트 경비원이 법원에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과로로 인한 실명이 산재로 인정된 첫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서울고등법원(재판장 이승련 부장판사)은 지난달 24일 경남 사천시 모 아파트에서 근무한 경비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공단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2017년 10월 사천시 아파트에서 경비원 업무를 시작해 5개월 뒤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고 오른쪽 눈도 뿌옇게 보이는 증상을 겪었다. A씨는 병원에 방문해 양측 시신경병증 진단을 받았고 결국 양쪽 눈 모두 실명했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과로와 스트레스가 실명의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실명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 산업재해에 해당된다고 봤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24시간 일하는 격일제 근무를 했고 1주일 평균 59.5시간 일했다. 밤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 5시간의 수면 시간이 주어졌지만 A씨는 경비실 간이침대에서 전등을 켜놓고 자거나 택배나 민원 등 때문에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A씨가 눈에 이상을 느낀 날에도 많은 눈이 내린 탓에 새벽 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제설 작업을 해 쉬지 못했다.

이 판사는 A씨의 근로환경 문제와 함께 A씨의 근로 계약에 ‘입주민들의 민원이 3회 이상 접수돼 개선 여지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를 계약 해지사유로 들고 있는 점도 스트레스와 과로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A씨는 경비일지에 반복적으로 ‘입주민에게 친절하게 하고 불필요한 말(변명)을 하지 말자’, ‘입주민을 설득하지 마라’ 등의 다짐을 적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재해 전문 변호사들은 “과로로 인한 실명은 그간 산업재해로 인정된 사례가 전무했는데 이번에 유의미한 판결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은 과로를 뇌심혈관계 질환과 관련해서만 규정하고 안과질환은 화학물질 노출에 관련해서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을 담당한 이재원 변호사(법무법인 더보상)는 “이번 사건은 질병의 형식적인 측면만 본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과로와 상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형식적 요건만 따졌다면 뇌심혈관계 질환이 아닌 A씨의 안과질환은 스트레스 상황이나 장시간 근로 등에도 과로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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