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이야기]

전기택 관리사무소장/거평프리젠아파트
전기택 관리사무소장/거평프리젠아파트

조치원역은 세종시에 가기 위한 관문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여 거리지만 기차에 오를 때는 여행가듯이 가슴 설레어 온다. 지하철이 출퇴근 느낌이라면 철도는 삶은 계란을 먹으며 여행 가는 소풍의 느낌이다. 

조치원을 찾은 게 햇수로 어느덧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다. 설 연휴에 동생이 마중 나오는 것을 피해 조치원역에서 버스를 타고 세종시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왔다. 

2월 초순의 날씨는 봄이 온 듯 포근했다. 길거리는 한적했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버스를 탔는데 안내방송 소리가 컸다. 좀 줄여 달라고 기사에게 말했다. 여전히 크게 나와 다시 말했다. 버스 회사에서 켜놓은 거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한산한 조치원 시내버스에서 안내방송이 유난히 크게 들린 것 같지만 기사도 자존심을 버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얼굴은 하염없이 흐르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이 부스스하다. 구순을 넘어 중반에 다다르면서 삶의 의미를 점점 잃어 가는 것 같다. 너무 오래 산다는 푸념이시다. 자식을 여럿 둔 것은 옛날 어머니들과 다를 바 없지만 작아진 체구가 가냘프게 보여 애잔하다. 당신의 젊은 시절 머리에 생선 대야를 이고 여기저기 생선을 팔러 다니는 등 생계를 위해 고생이 많으셨다. 

아직 눈은 어둡지 않아 바느질은 하는데 귀는 큰소리만 들린다며 말을 많이 하신다.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전에 듣던 말 그대로다. 나는 들어주며 웃거나 맞장구치는 게 일이다. 가시고기가 자신을 희생해 자식을 키우는 것처럼 부모는 자식들에게 큰 가시고기가 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신다. 하지만 자식들은 제 한 몸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것 같다. 발코니 유리창 너머 보이는 바깥 햇살은 환하다. 

거실은 스며드는 한낮의 햇볕보다는 온 가족의 따뜻한 온기로 훈훈하다. 어머니는 아들이 사는 아파트로 오셔서 생활하신다. 주택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한 발짝만 떼면 동네방네 친구분들이 있고 같이 정담을 나누며 의지하는 기회는 없어졌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홀로 기거하시던 집은 바로 앞이 바다인 안면도 백사장이었다. 어렸을 때 고기 배에 있는 판자 뚜껑을 바다에 띄워 놓고 튜브 대용으로 물놀이하던 생각도 난다. 썰물이 되면 배만 덩그러니 남아 허연 배를 개펄에 드러내어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바로 옆 제방은 풀이 우거져 정월 대보름에 달집을 태우듯 가끔 불을 지피던 것도 볼 수 있었다. 

요즘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학령 아동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시골 등굣길이 다 그렇듯이 한 무리 친구들과 어울려 우거진 수풀 길을 떠들썩하게 걸었다. 서울로 떠나 온 후 우연히 따라온 낚시 모임의 출항지도 여기 백사장항이었다. 이곳도 관광지 특성을 잃었는지 점점 방문객도 줄어드는 듯싶다. 

담요를 무릎에 덮고 점심을 드시는 어머니의 식사량은 반 공기도 안 된다. 맛집을 순례하며 마음껏 미식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호흡은 깊게 해야 건강에 좋고 음식은 소식해야 장수한다. 장수하려고 소식하는 게 아니라 적게 드시니 장수하는 것 같다. 우리 형제들이야 그저 끼니만 되면 때울 음식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려고 한다. 

저녁 무렵 병천에 가려고 차에 올랐다. 국도는 메마른 나뭇가지들이 앙상하게 늘어선 가운데 땅거미가 지고 있다. 주변이 온통 야산이니 전조등만 외롭게 어슴푸레한 빛을 비춘다. 병천 아우내 장터는 천안삼거리로 가는 길목이다.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이어나가 기미년 3월 1일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천안독립기념관을 찾은 후 들르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순대 거리라고 할 만큼 순댓집이 즐비하다. 저녁을 먹고 나오자 그새 어둠은 확연하게 짙어져 있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인 듯 식당도 일찍 문을 닫을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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