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의 수요책방]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미국 뉴욕 한복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뉴요커’ 잡지 사무실에서 경력을 쌓아 가던 어느 날, 저자는 암으로 투병하던 형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는다. 장례식이 끝난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독한 무기력에 빠져든다. 이전과는 다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나 자신을 놓아두기로 결심한다. 

“나의 결혼식이 열렸어야 했던 날, 형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그해 가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지원했다. 그렇게 한동안 조용하게 서 있고 싶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 경비원 일은 예술이나 보안 분야 경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메트는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런던의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약 300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대륙별 여러 나라에서 온 예술품과 고대 유물을 전시하는 4개 블록에 17개 전시관으로 구성된 곳으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2008년 가을 근무복을 입고 경비원으로 출근한 첫날, 스페인 엘 그레코티의 대작 ‘톨레도의 풍경’이 그를 반겼다.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만나는 그림들은 수 세기를 넘나든다. 신성과 세속, 스페인과 프랑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가 번갈아 다가왔다. 마침내 라파엘로의 ‘성좌에 앉은 성모자와 성인들’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첫 근무지인 C구역이다. 

경비원의 아침은 늘 고요하다. 렘브란트, 보티첼리 등 거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믿어질 만큼 강력한 환영들이 반길 뿐이다. 메트가 마을이라면 그림 속에 주민이 얼마나 살고 있을까. 하나하나 그림을 세어본 결과 무려 8496명이 거주 중이다. 물론 배경 그림의 투우장 관객, 개미 크기 곤돌라 사공까지 포함되어 있다. 

예술품을 지키는 일은 보통 혼자 하지만 가끔 예외도 있다. 가방 검사를 하는 곳이다. 짝을 지어 가방 안을 뒤적이며 미술관 반입 금지품이 없는지 확인한다. 누가 봐도 뻔한 금지 품목에는 음식물, 여행 가방, 원본 예술품, 악기, 벌레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 꽃다발 등이 종종 나온다. 휴대품과 코트 보관소인 ‘체크 박스’에서도 파트너와 함께 일을 한다. 

매년 700만 명이 메트를 찾아온다. 절반 정도는 해외에서 오고 나머지는 미국인이다. 미국인 중 절반은 뉴욕시 밖에서 온다. 뉴욕 거주자는 원하는 만큼 내라는 기부 입장료 방침에 따라 돈 걱정할 필요 없이 공원에 소풍을 온 기본으로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이곳은 뉴욕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로 손꼽힌다. 

대부분의 경우 예술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하거나, 장엄 혹은 슬픈 삶을 계속하면서 그 덧없는 순간이 흘러가지 않도록 화폭에 담아내 세대를 이어가며 많은 영감을 준다.

미술관 경비원으로 명작을 지켜보며 저자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특히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명작을 통해 삶이 휘청거리고 삐걱거리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삶이 여러 챕터이며, 현재 챕터도 언제라도 끝날 수 있는 것도 알게 됐다. 나이 듦과 인생의 흐름을 바라보는 눈을 갖춘 것이다.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형의 초상화, 티치아노가 그린 듯한 밝고, 솔직한 형의 얼굴이 선명하게 살아있고, 그 모습에서 나는 위안을 찾는다. 이 그림이라면 확실히 내가 메트 바깥으로 품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0년 가까이 걸작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저자는 이제 맨해튼 도보 여행가로 직업을 바꿨다.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얼마나 신나고 행복한지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낀다. 미술관 경비원 경험이 준 선물이다. 이 책은 인생은 짧고 예술의 감동은 길다는 격언을 확인해 준다. 문득 주말에 근처 미술관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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