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선제도 확 바꿔야 (6) 사업주체・지자체 전문성 절실
“총론 없고 노후화 고려도 안해 충격”
관리규약과 안 맞는 계획 세우기도
교육 의무화하고 검증 절차도 필요

경기 안양시에 새로 들어선 모 아파트 A관리사무소장은 지난해 첫 장기수선충당금 부과를 위해 사업주체가 수립한 장기수선계획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긴급공사와 소액지출 등을 기술한 장기수선계획 총론이 아예 없었기 때문. 계획기간을 40년으로 정하면서 사용승인일부터 최초 적립일까지의 1년 공백과 노후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적립률을 정한 사실도 A소장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A소장은 결국 사업주체가 만들어놓은 장기수선계획서를 하나하나 뜯어고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서대문구 모 아파트 B소장은 입주 1년이 되기 전 지자체에 장기수선계획서를 요청해 받았다. 계획서는 황당했다. 사업주체가 만든 관리규약에는 장기수선계획 기간을 40년으로 정해놓고도 계획서에는 25년으로 반영해 놓았다. 수선금액도 총금액을 단순히 면적과 기간으로 나눠 산정해 놓았다. B소장은 “첫 장충금을 곧 부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관리규약을 개정해 계획기간과 장충금 적립률을 변경하고 계획서도 수정해야 해 머리가 복잡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공동주택을 건설·공급하는 사업주체는 건물 사용검사를 할 때 건설비용을 고려한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어 이를 사용검사권자에게 제출하고 사용검사권자는 관리주체에 업무를 인계한다. 그러면 관리주체는 이 장기수선계획서에 단지 시설물이 누락되지 않았는지, 시설물의 수선주기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검토해 문제가 있을 경우 사용검사권자에게 보완을 요청한다.

현실은 이 정도로 평안하지 못하다. A소장은 “사업주체가 최초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법적 의무 이행을 위해 형식 갖추기에만 급급한 수준이고 관리주체가 모두 새로 만들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첫 계획, 시행사 대신 설계업체가 떠안아

사업주체의 의무인 최초 장기수선계획 수립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전문가와 현장 관계자들은 사업주체가 수익에 영향을 주지 않는 장기수선계획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전문지식이 부족한 사업주체와 사용검사권자가 ‘표지 갈이’ 수준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

한대철 장기수선기술원 본부장은 “사실은 사업주체가 자체적으로 수립하지도 않는다”고 현실을 고발한다. 그는 “사업주체는 건축설계사무소나 시설물통합정보관리시스템(FMS)에 제출할 도면을 작성하는 업체에 계획서 작성을 맡기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계획서에 건설비용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사용검사권자인 지자체의 담당자가 잦은 인사이동, 현장 경험 부재 등의 이유로 장기수선계획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워 계획에 개선해야 할 사항이 있어도 찾아내지 못하기 일쑤라고 꼬집었다.

◇“전문기관 검증 절차 도입해야” 

오주식 주택관리사(전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경남도회장)는 사업주체가 장기수선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주택관리사는 교육을 통해 사용검사 신청 시 장기수선계획의 세부산출 내역을 첨부하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한 본부장은 “사업주체와 사용검사권자가 사용승인 전에 전문기관에 장기수선계획 검토를 맡기는 검증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계획이 만들어질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내용은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2월 발의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에 담겼으나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문기관이 아닌 민간업체의 반발, 적정성 검토 이후의 책임성 저하 우려와 사업주체의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법안은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 그대로 폐기된다.

한 본부장은 또 관리주체가 장기수선계획서를 인계받은 즉시 내용을 검토해 문제를 지적하고 보완을 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업주체가 계획서를 검토할 정도의 전문인력을 고용하지 않은 점도 문제삼았다. A소장은 “부실한 계획서를 추방해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업주체 내부에 장기수선 전문 부서나 직원을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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