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현 변호사
박수현 변호사

직장 내 괴롭힘과 산업재해가 계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학창 시절 교과서로 배웠던 ‘직업의 의의’가 기억난다. 그것은 경제활동을 통해 개인의 생계를 꾸려감과 동시에 자아실현과 발전을 위한 장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명시돼 있다. 우리가 배운 직장이라면 괴롭힘과 산재가 아주 드물게 발생할 수 있는, 매우 특이한 사건이어야 한다. 그러나 교과서와는 달리 현장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최근에도 눈길을 끄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기사가 있었다. 지난해 3월 관리사무소장의 갑질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대치동 A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산업재해가 인정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앞서 유족 측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면서 제출한 의견서에서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3개월 초단기 근로계약으로 인한 불안한 고용환경, 열악한 휴식공간에 더해 소장의 괴롭힘으로 인한 직장 내 갑질이었다”고 호소했다. 

고인은 사망 전에 동료들에게 “관리반장직을 내려놓게 하는 등의 소장 갑질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고 있어 힘들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 수서경찰서는 소장에게 범죄 혐의가 없다고 보고 지난 7월 사건을 입건 전 조사(내사) 종결했다. 하지만 소장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을 조사한 고용노동부 서울강남고용노동지청은 지난달 용역업체 측에 개선 지도 조치를 내렸다. 노동지청의 관심사는 범죄가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여부였다.

이후 A아파트의 경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고인의 죽음만큼이나 황망한 후속 조치로 경비대원들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산재 판정이 시련의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련’은 해고 위협이었던 것 같다. A아파트는 기존 76명인 경비원들을 2024년부터 33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경비원들의 불안은 상당했을 것이다. A아파트 측 역시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예정된 대로 지난해 말일 자로 경비원 44명에게 계약 종료 문자를 발송했다.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 용역업체를 교체하면서 동별 경비초소 수 감소 및 무인 주차관리시스템 도입을 이유로 기존 경비노동자 숫자를 줄였다. 사망 경비원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노조를 만든 경비노동자들도 계약 종료 대상이 됐다고 한다. 이들은 “피로 물든 아파트를 집단해고로 씻어내겠다는 아파트의 야만을 규탄한다”며 투쟁에 돌입했다.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2월 7일 A아파트 정문 앞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도 사람”이라며 원직 복직을 촉구했다.

아파트 입대의, 관리사무소, 경비원 측이 모두 각자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사태의 원인으로 서로 다른 것을 지목할 것이다. 분쟁 사안은 과거에도 대부분 그랬었다. 확실한 것은 과거와 달리 직장 내 괴롭힘이 쉽게 용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의한다. 근로기준법은 이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든지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산재는 10년 전에 비해 결과적으로 다행스러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산재를 인정하는 추세다. 예전에는 산재보상을 받는다는 것이 마치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는 보험회사를 상대하는 것처럼 어렵고 힘들었다. 

그중 하나가 고령자와 과로로 인한 산재였다. 일하다 추락해 사고를 당하는 경우처럼 너무나 당연히 산재가 인정되는 경우와 달리 그 외의 질병에 대해서는 까다롭게 굴었다. 그래서 “고령자이니 이미 노화로 인해 한두 가지 지병이 있었을 것이고, 결국 고령이 원인이지 업무상으로 인한 산재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일이 허다했다. 또 스트레스나 과로의 경우에도 “직장인들이라면 그 정도 스트레스나 과로는 누구나 겪고 있으니 이 정도로 산재가 인정될 수는 없다”는 답답한 이야기를 듣게 되기 일쑤였다.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산재가 인정된들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발생한 피해와 상처를 0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기 전에 건전한 직장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박 수 현 l 법률사무소 다현 변호사. 공인노무사. (사)변호사지식포럼 노동분과위원장.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 전문강사. 기업의 법률 및 노무 자문과 HR컨설팅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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