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이야기]

지철민 관리사무소장/부산 거제동월드메르디앙아파트
지철민 관리사무소장/부산 거제동월드메르디앙아파트

우리 아파트에는 약 4000명의 입주민이 모여 산다. 입주민이 집에 들어가려면 2~3개의 보안문을 통과해야 한다. 문은 카드나 지문인식으로 열린다. 아이들이나 어르신들은 지문인식이 잘 안돼 불편해했다. 어떤 어르신은 관리사무소에서 지문 등록을 해도 잘 안됐다. 그러면 그들은 “지문이 잘 안되는 걸 보니 많이 늙었구나” 하며 쓸쓸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몇몇 어르신이 “다른 아파트에 갔더니 휴대전화만 들고 있으면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면서 “우리 아파트도 빨리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원패스 도입을 주저하고 있었는데 마침 보안경비 업체와 재계약 협의 중이라 제안서에 원패스 설치를 넣도록 했다. 계약 후 바로 설치하도록 했다. 구청에 연락해 보니 허가나 신고 절차 없이도 가능하다고 했다. 휴대전화 원패스 앱 설치와 이용 방법 안내 공고문을 A3 용지로 커다랗게 만들어 승강기 안에 붙였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관리사무소 도움을 받도록 안내했다. 

입주민 대부분이 원패스 앱을 깔고 불편 없이 이용하기까지 시행착오도 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친절하게 정성을 다해 도와주니 입주민들의 찬사가 이어진다. “우리 아파트 관리직원들 최고”라고 엄지척이다. 먹을거리도 많이 사다 주신다. 그래서인가 주택관리업자 재계약 전자투표를 할 때도 90% 이상 찬성이었다. 

어르신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관리사무소에 올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느 해 추석이었다. 어머니는 “철민아, 나도 휴대전화가 갖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이고 어머니, 여기는 심심산골이라 휴대전화가 잘 안 터지고 사용하기가 어려워서 안 돼요”라고 대꾸했다. 어머니는 마을 친구들이 “자식들이 휴대전화을 사줬다”고 자랑하는 게 부러우셨나 보다. 친구들이 “동애야, 너는 자식들이 잘 돼서 부자로 잘 산다던데 휴대전화도 하나 안 사 주더냐” 하는 말에 큰 상처를 입으셨나 보다.

며칠 후 어머니가 휴대전화로 전화하시더니 휴대전화를 샀다고 자랑하셨다. 읍내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휴대전화를을 개통하셨단다. 할머니들이 밭에서든 장터에서든 휴대전화로 자식들과 통화하는 모습에 ‘바로 저거다’라는 생각이 드셨나 보다. 언제 어디서든 그리운 자식들을 만날 수 있는 신기한 기계라고 생각하셨을 거다. 그래서 아들에게 휴대전화를 사달라고 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안 사주니 직접 읍내에 가셨다. 나는 ‘왜 어머니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하며 불효막심 자책감에 떨었다. 

어머니는 큰 글씨로 쓴 자식들 전화번호와 주소록을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하게 지니고 다니셨다. 그 주소록에는 큰아들부터 막내까지 순서대로 아들, 며느리, 딸, 사위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큰 글씨로 적혀 있다. 참기름, 참깨, 고추, 쌀, 호박 등 어머니가 손수 농사지은 것들을 택배로 부치실 때 그 주소록을 꺼내 보여줬다. 

휴대전화를 개통하실 때도 주소록을 꺼내서 자식들에게 전화하게 해달라고 하셨나 보다. 단축번호 1번은 큰아들, 2번은 둘째 아들, 3번은 셋째인 내가 배정돼 입력됐다. 어머니는 집에 있는 일반 전화는 마다하고 휴대전화가 잘 터지는 고개에 가셔서 1번부터 14번까지 순서대로 눌러 전화하시고는 했다. “철민아, 나 휴대전화로 전화한다. 잘 들리냐. 이참에 참깨하고 된장하고 간장하고 마늘하고 쌀하고 택배 보냈다.” 14번까지 그렇게 전화하는 걸 매우 즐거워하셨다. 거의 매일 14번까지 전화하고 집에 오셔서 재빨리 충전했다.

어느 해부터인가 어머니 전화가 띄엄띄엄 왔다. 어머니는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어머니 나이를 물어보면 항상 “칠십”이라고 대답하셨다. 그 후 어머니는 휴대전화 충전도 안 하셨다. 자식들 그리움도 서서히 잊혀가는 듯 휴대전화를 서랍 깊숙이 넣어두셨다. 어머니는 자유로운 영혼이셨다. 도시의 아파트를 감방처럼 생각하셨다. “나는 여기서 살다가 죽을란다. 여기 새들도 내 친구, 온갖 꽃들도 내 친구이니 걱정 말고 어서 가거라.”

어머니 돌아가신 지 몇 해가 지났다. 그리움이 사무칠 때마다 휴대전화를 꺼내 어머니를 살핀다고 시골집에 설치해 둔 CCTV앱을 눌러 텅 빈 어머니 방을 들여다본다. 텅 빈 방의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휴대전화에는 아직도 자식들 전화번호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으리라. 어머니가 휴대전화로 자식들에게 보낸 수많은 전파 신호는 우주 한가운데 어딘가를 항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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