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필의 승소열전]

권형필 변호사
권형필 변호사

관리사무소장이 입주민이 작성한 동대표 해임동의서를 해임 대상자에게 열람하도록 제공해도 될까. 이번 사례는 소장이 해임동의서를 교부 받은 후 해임 동의 대상자에 대해 해임 동의서를 열람하게 함으로써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건이다.

원심에서는 해임동의서를 교부 받은 소장의 지위는 개인정보처리자의 지위에 해당하지 않아 소장이 해임동의서를 동대표 중 특정인에게 건네줬다고 하더라도 개인정보처리자임을 전제로 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대법원에서 이와 다른 판단으로 원심 파기 및 환송 판결선고를 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이 사건 아파트 소장이 아파트 선거관리위원장으로부터 일부 입주민들이 제출한 동·호수, 이름, 전화번호, 서명 등이 연명으로 기재된 동대표 해임동의서를 해임요청의 적법 여부 검토를 위해 교부받은 다음 해임동의 대상자인 동대표에게 열람하도록 제공해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했다는 점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 제2호에 따라 개인정보를 처리했거나 처리했던 자는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해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제공한 자, 그 사정을 알면서도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 받은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개정 전 제71조 제5호, 현행법 제9호).

이에 대해 원심은 1심 판결을 일부 인용해 피고인 소장은 이 사건 해임동의서에 기재된 입주자들의 개인정보를 일시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소정의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정보파일’을 ‘운용’하기 위해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을 통해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개인정보처리자’의 지위에 있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 제2호의 의무주체가 제2조 제5호에서 정한 ‘개인정보처리자’에 국한됨을 전제로 한 원심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제59조 제2호의 의무주체는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로서 제15조(개인정보의 수집·이용), 제17조(개인정보의 제공), 제18조(개인정보의 목적 외 이용·제공 제한) 등의 의무주체인 ‘개인정보처리자’와는 법문에 있어 명백히 구별된다.

개인정보보호법이 금지 및 행위규범을 정함에 있어 일반적으로 개인정보처리자를 규범준수자로 하여 규율하고 있음에 따라, 제8장 보칙의 장에 따로 제59조를 둬 ‘개인정보처리자’ 외에도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를 의무주체로 하는 금지행위에 관해 규정함으로써 개인정보처리자 이외의 자에 의해 이뤄지는 개인정보 침해행위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여 사생활의 비밀 보호 등 개인정보보호법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 제71조 제5호의 적용대상자인 제59조 제2호 소정의 의무주체인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는 제2조 제5호 소정의 ‘개인정보처리자’ 즉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정보파일을 운용하기 위해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을 통해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공공기관, 법인, 단체 및 개인 등에 한정되지 않고 업무상 알게 된 제2조 제1호 소정의 ‘개인정보’를 제2조 제2호 소정의 방법으로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자를 포함한다”고 봤다. 결국 대법원은 관리주체에게 개인정보처리자로서의 지위도 인정될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해 원심의 판단을 파기한 것이다.

이로써 관리주체, 정확하게 소장이 개인정보가 기재된 문서를 함부로 유출할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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