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의 수요책방]

다섯 번째 산(파올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문학동네)
다섯 번째 산(파올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문학동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연금술사’ 책 속의 이 한 문장이 저자를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로 만들었다. 그 시작은 바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주변에도 유럽 3대 순례지인 이곳을 다녀오는 것을 계획하거나 이곳을 경험하고 삶의 전환점이 됐다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각자 ‘자아의 신화’에 이르는 진정한 길로 돌아가게 하는 일들이 생긴다”며 “우리가 삶에서 배운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일들도 일어난다”고 말한다. 역경이 닥쳐올 때 누구는 극복하고 누구는 포기한다. 책은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 엘리야 이야기에 문학적 상상을 더 해 역경 극복을 다룬다. 

이야기는 기원전 870년 초, 어느 먼 도시 니네베에서 전쟁을 도모하는 회의가 열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 회의에서 아시리아의 장군들은 지중해 연안국들을 정복할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의했다. 그중에서 페니키아가 첫 번째 침략 대상이었다. 

한편 기원전 870년 초, 이스라엘 길르앗의 어느 마구간에서는 두 남자가 수 시간 안에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며 숨어 있었다. “제가 섬기던 주님께서 저를 적들의 손에 버리셨습니다.” 엘리야가 말했다. “하느님은 하느님일 뿐일세.” 레위 사람이 대답했다. “그분은 모세에게 당신이 선인지 악인지 말하지 않았다네. 그분은 다만 ‘나는 곧 나다’라고 하셨지.”

그들에게는 대화만이 두려움을 쫓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당장이라도 병사들이 마구간에 들이닥쳐 숨어 있는 두 사람을 찾아낼 것 같았다. 그래서 페니키아의 신 바알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처형당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할 수도 있었다. 병사들은 집마다 뒤져 예언자들을 찾아내 개종시키거나 처형하고 있었다.

엘리야는 도망치다 아크바르라고 부르는 도시, 사렙타가 있는 골짜기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아들을 하나 둔 과부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어느 날 오후 과부의 아들이 위중해졌고 엘리야가 온 힘을 다해 기도했지만 아이는 죽었다. 총독과 사제장 주재로 아크바르 평의회가 소집됐고 엘리야는 그 자리에 불려 나왔다. 

“너는 사랑을 증오로 갚았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사형을 내린다.” 총독이 말했다. 엘리야는 고개를 숙였다. 주님이 그를 버리셨으니 이제 그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아 마땅했다. “다섯 번째 산으로 올라가라. 가서 네가 모욕한 신들께 용서를 빌어라. 신들께서 하늘의 불을 내리시어 너를 죽일 것이다.”

다섯 번째 산으로 엘리야를 끌고 가는 수비대 뒤로 아크바르 주민들이 행렬을 따라왔다. 사람들은 욕설을 퍼붓고 돌을 던졌다. 병사들은 군중의 분노를 잠재우느라 진땀을 흘렸다. 병사가 창끝으로 밀며 “아이를 죽인 자는 가장 끔찍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예언자 엘리야는 박해를 피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고향 이스라엘을 떠난다. 하지만 낯선 땅 페니키아 아크바르에서 이해하기 힘든, 피할 수도 없는 시련이 연이어 닥쳐온다. 주변 사람들의 죽음은 물론 모략과 함께 처형당할 위기가 그것이다. 엘리야는 시련의 매 순간 자신의 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당신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행하시는 일에서 정의가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쉽지 않다. 한때 잘나갈 때도 있지만 때때로 시련과 고난이 닥쳐 피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피할 수 없는 일에도 끝은 있다. 그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 단단하고 훌륭한 교훈을 남긴다. 엘리야는 끝내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갔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가 훨씬 더 훌륭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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